이력서를 쓰다가

 

 

 

오늘 이력서를 쓰다가 가족이 많이 줄었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란에는 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 나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라고 쓰던 때가 있었는데.

 

형이 이민을 가서 자리가 비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또 자리가 비고,

 

이력서 가족란에는 나를 빼고 둘 뿐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건조한 이력서 형식, 더군다나 상대방이 포멀한 양식을 원했으니, 속에서

 

빈방의 냄새를 맡는다.

 

이사를 갈 때는 바퀴벌레가 없는지 잘 살펴볼 것.

 

가족이란 형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어쩐지 약간

 

버림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날 나는 틀림없이 무척 화창한 날에 강가를 걸으며

 

피라미드 돌덩이를 날랐을 노예들을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사진은 찍을 때마다 늘 낯선 내 모습을 남겨 놀라게 하고

 

벌써 3주나 예정된 결혼식 스케쥴과 엉겹결에 챙겨든 청첩장들이

 

초과 수용한 노예선처럼 아찔아찔하다.

 

어쩌면 이력서도 벽돌처럼 어디 한 군데 찡겨 넣으려고 만든 것일텐데.

 

그렇게 만들어진 방, 집, 피라미드, 궁전, 하렘이며 빌딩들.

 

비어있는 것은 아니겠지?

 

빈집 구경하러 이집트까지 가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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