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범우사, 1999

 

 

 

#  뒤 마르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예문에서의 '나는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그 본래의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에서의 '나는 가지고 있다'라는 표현은 모방에 불과하다. 그것은 빌어온 표현이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를 뜻하며, '나는 욕망을 갖는다'는 말은 '나는 탐낸다'를 뜻하며, '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나는 바란다'를 뜻한다 등등"

 

# 뒤 마르세 이후 2백 년 동안 동사 대신 명사를 쓰는 이 경향은 그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의 비율에 달했다... "선생님, 저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십 년 전이라면 환자는 '저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말 대신 '저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라고, 또 '불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신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최근의 어법은 널리 퍼진 고도의 소외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주관적 경험이 배제된다. 경험의 '나'가 소유의 '그것'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 '나는 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사람이 그 주체가 되는 내적 능동성이다.

 

#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의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사이의 차이는 다음 두 가지 정식(定式)으로 표현된다.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와 '나는 알고 있다'로. 지식의 '소유'는 이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을 손에 넣어 보지하는 것이다. '인식'은 기능적이며, 생산적인 사고과정에서 하나의 방법으로만 도움이 된다.

 

# 존재양식에서의 신념은 우선 어떤 관념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내적 지향이며 '태도(attitude)'이다.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사람이 신념 '속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가 그들이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숨기기 위한 말의 오용(誤用)이다. 얼마나 많은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완전 미해결의 문제이다... 결혼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랑에 의해 결혼했든, 과거의 전통적인 결혼처럼 사회적 편의나 관습에 의해 결혼했든 간에 진짜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부부는 예외처럼 보인다.

 

#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길 원하기 시작하고 어머니,아버지, 형제 자매, 장난감을 '갖게' 된다. 좀 더 지나면 지식, 직업, 사회적 지위, 배우자,자녀들을 '얻게'되며, 그리고 묻힐 곳을 얻고 생명보험에 들며 '유언장'을 작성함으로써 이미 일종의 내세(來世)까지도 '소유'하게 된다.

 

# '만약 나를 나의 소유라 가정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그때의 나는 누구일까?'

 

# "교접(交接) 뒤의 동물은 슬프다(post coitum animal triste est)" 는 격언...

 

# 유태교와 기독교의 신학사상의 고전적 개념에서는 죄(罪)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불복종'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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