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사이렌소리
-송종규
아이들 서넛이 둘러서서 얼어붙은 미나리 밑둥만 툭툭 차고 있었다 두꺼운 침묵을 깨고, 우리 내일 이사 간데이 나는 결연하게 말했다 정말이가? 어디로 가노? 새까만 아이들 두 눈에서 겨울 햇살이 반짝였다
정오마다 어김없이 울리던 안동군 풍산면 지서 뜰의 사이렌 첨탑은 거기 그대로 남고
금테 두른 모자에 늘 정복을 입으셨던 젊은 아버지 따라 우리 가족은 시내로 이사를 갔다
풍산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그 겨울의 미나리꽝이 떠오르고 정오를 알리던 사이렌 첨탑 불쑥 솟아오른다
뉘엿뉘엿 아버지 벚꽃 아래 걸어가신다
어린 사환 아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첨탑 위에 올라가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울린다 사이렌 소리가 미루나무꼭대기까지 나를 밀어 올린다 세월 훌쩍 뛰어넘어 깊은 강 겹겹 아버지
강물 위에 지는 해 남은 색깔 다 풀린다
번들거리며 빛나는 혼돈과 물기들
발끝으로 툭툭 쑥부쟁이 우듬지 건드려본다
봄이 왔다, 사닥다리를 타고
사이렌 소리가 질펀한, 지상으로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