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은 오지 않고 있었다

하수구멍 안에서 낚시라도 할 것 같은 아저씨들이

한 곳에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문근영이 흰색 목도리를 두르고

턱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하면서

부끄럽고도 기쁜 표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자막은

기부천사 문근영 모교에 장학금 1억원 기부...

이런 비슷한 거였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신용카드 모델로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문근영을 쓰자는 의견이 있었고

모델 메이젼시를 통해 카드 모델을 제의했다

신용카드는 신용카드인만큼

내가 제시했던 노홍철이나 최홍만 같은 이들은 쉽게 모델이 될 수 없다

문근영은 참 이미지도 좋고

이제 스무 살이라는 성인제품(신용카드)의 모델로서의 핸디캡을 갖고도

그것을 이겨낼 정도의 호의와 가능성을 지닌 그런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모델 제의를 거절했다.

아직 학생 신분인 근영이에게 신용카드라는 소비성 제품의 모델은 시키고 싶지 않다는

문근영 부모의 의견 때문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늘상, 연예인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대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모델 제의를 거절 받고 나서도 오히려 기분 좋아했다

 

참 밝고 예쁘게 자란 문근영의 뒤에는 참 밝고 바른 사고의 부모가 계셨구나

생각하니 더더욱

문근영이가 싫어졌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하수구멍에서 떡밥이라도 끓여먹을 듯한 아저씨들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울극장에 가서 '게이샤의 추억'을 보았다.

 

그 '시카고'를 만든 감독이라서 기대를 했는데 별로였다.

일본문화에 생소한 서양인들이라면 몇 배의 감동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시종일관 밋밋했다.

'시카고' 적인 냄새를 기대했던 나는 문근영이 미워졌다.

 

공리와 장 쯔이의 외모가 닮았다는 것이 재밌었다.

공리의 연기는 여전히 나를 쭉쭉 빨아당기는 물관 같은 것이 있었다.

 

주절주절 나불대는 나레이션은 짜증이 났다.

나불나불 설명해대는 방식의 진행은 아름답지 않다, 특히나

절제, 축소 미학의 일본문화를 표현해내는데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로키산맥의 붉은 흙만큼이나 많았다.

 

게이샤, 혹은 일본 정신의 한 면을

주절 주절 설명해대는 것이 참 비일본적이어서 또 곤약 모양의 도너츠를 만들어 놓고서는

곤약 먹는다고 폼잡는 자기들끼리의 인텔리 모습이 떠올랐다.

 

요요마의 첼로연주와 이작 펄만의 바이올린 연주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것도 군더더기였던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도.

다이아몬드가 너무 많아서 다이아몬드가 보이지 않는 데코레이션을 보는 기분.

 

하나의 다이아몬드를 위해서 팔과 다리를 잘라 내는 잔인할 정도의 일본 특유의 미학이

과정부터 다르게 잡혀지지 않았나 싶다.

 

'설국'이라는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햄버거와 치즈 케잌과 피자와 도너츠를 먹은 뒤에 김치가 먹고 싶어진 것처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싫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가끔 내가 '좋다'고 하는 것을 남들도 '좋다'고 하면 불안해진다.

그러나 또 한 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들이 좋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를 바라면서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어쩐지

카드 모델 제의를 거절하는 문근영과 맥락은 다르나 선이 닿는 공통점이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문근영만큼이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나를 '싫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 '나'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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