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잎 피아노

 

 

 

 

감에서 정자냄새가 난다

정자에서는 감 냄새가 난다

감 껍질을 벗기는데 음정이 맞지 않았다

내 심장은 편곡되어 가는 중이다

이제 먼

곳을 보지 못하는 두 눈동자가 달려나가

싱크대에 머리를 박는다

 

새벽에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잔뜩 늙은 아주머니 한 분이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찾고 찾고 찾고 있었다

라면을 잔뜩 훔쳐 나온 나는

다시 들어가 부탄가스를 한 줄 훔쳐왔고

다시 들어가 감을 한 봉지 담아왔다

잔뜩 늙은 아주머니는 치매 걸린 양

바닥에서 자꾸만 뭔가를 찾았다

집에 돌아와 땀이 식기도 전에

달이 마르기도 전에

그게 내 엄마인 줄 알았다

 

잠에서 깨어 냉장고를 열었다

아버지가 사다 놓은 감이 있었다

꿍꽝꿍꽝 피아노가 울렸다

내 손에서는 감 냄새가 났다

니가 울면 피아노가 되는 거라고

붉은 연못의 피아노가 되는 거라고

말하는 감나무가 되었다

 

난 엉덩이를 훙훙 이파리처럼 떨었다

아침까지 떨었다

 

 

 

 

 

* 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 말이 많다. 어머니는 내가 국문학과를 가겠다고 했을 때, 한 마디의 의문도 갖지 않으셨다, 잘됐네~ 하셨다. 장래 직업도, 뭐해서 먹고 살려고 그러는 지도 묻지 않으셨다. 잘됐네~ 하셨다.

 

나는 당시 한창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 불만을 마침내 얘기하게 된 것은 거의 10년이 지나서인 작년 봄이었고, 어머니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밥을 먹다가 우셨고, 너마저 그러냐구~ 우셨다.

 

내가 뭔가를 안다, 고 생각하는 것은 잔인한 질병이다. 내가 뭔가를 안다, 고 생각하는 저열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 수록, 더 많이 더 빨리 무언가 속시원히 알게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니면 죽든가.

 

나이 스물 아홉, 어머니는 어머니답지 않게 끝까지 한 가지를 양보하지 않으셨는데, 그건 내가 평생 혼자 살고 싶다는 바램에 대한 것이었다. 어머니께 결혼 하겠다고 약속하거나, 신부감이라고 누굴 선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끝까지 어머니를 설득하지 않고, 지레 '얘기해 봤자 알아먹지 못할 분'이라고 생각하고서 어머닌 어머니 맘대로 생각하시고 나는 끝까지 내 생각을 지키자고 했던 태도에 대한 것이 후회된다.

 

어제 일요일, 사실 약속을 두 세개 정도는 잡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하루 종일 누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집에 와서는 맥주를 두 병 마셨다.

 

책은 폴 오스터의 공중곡예사 라는 책이었고

고아들이 많이 나오는 책이었다.

 

보통은 꿈을 꾸다가 울게 되고, 꿈에서 깨면 내가 울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는 꿈을 깨고 나서, 꿈 속에서 어머니를 봤고,

그 어머니가 어릴 적 내가 살던 면목동에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쥐새끼 한 마리도 없는 그런 새벽에

전구를 켜놓고 뭔가를 그렇게 찾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나는 뭔가를 자꾸 훔치고 또 훔치고

 

깨고 나서야 그 치매 걸린 노인이 내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화가 나고 또 화가 났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어머니 나는 별로 잘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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