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 시지프의 신화 中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침식당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한 인간의 애착 속에는 이 세상의 온갖 비참보다 더 강렬한 무엇인가가 있다. 육체의 판단은 정신의 판단에 맞먹는 가치가 있으며 육체는 소멸 앞에서 뒷걸음질을 친다.

우리는 생각하는 습관을 얻기 전에 살아가는 습관을 지니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첫 페이지 속에 있는 것이다.

 

 

즉 세계가 두꺼운 것이라고 깨닫는 것, 하나의 돌이 얼마만큼 낯설고 우리들에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강도(强度)를 가지고 자연이, 하나의 풍경이 우리들을 부정할 수 있는가를 엿보는 것 등의 낯설음이 있다. 모든 미()의 밑바닥에는 무엇인가 비인간적인 것이 가로 놓여 있다.

 

 

만약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괴로운 질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귀처럼 환상의 장미꽃을 먹고 살아야 한다면, 부조리한 정신은 단념하고 허위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두려움 없이 키에르케고르의 대답, 절망(le desespoir)을 받아들이기를 택할 것이다. 결국 확고한 영혼은 항상 이것으로 낙찰될 것이다.

 

 

진정한 모든 존재는 일인 다역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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