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움을 빨리 느낀다
내 책상이 너저분한 이유도
매일 똑같은 자리를 쳐다보기가 지겨워서 하나씩 다른 물체를 늘어놓다보니 그렇다
내가 모니터를 오래 바라보기 싫어하는 이유도
모니터의 전자파 및 형광파 및 아무튼 눈이 아픈 이유와 함께
매일 똑같은 질감의 그 평면을 쳐다보는 게 지겹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바다고 바다가 넓어도
내가 타고 있는 배가 항상 똑같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지겨움을 느끼고 있다
무얼 얼마나 했다고 그런 소리냐,는 말을 나 같아도 나에게 할 것 같지만
15년을 일한 팀장님과 12년을 일한 부장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10년 정도 여기서 근무를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저쪽 사무실 끝의 팀장님부터 반대쪽 사무실 끝의 부장님까지를 쭈욱 훑으면
나의 10년도 저쪽 끝부터 이쪽 끝 사이 인 것만 같아 지겨워진다
이런 식이면 누굴 만나도 무엇을 해도
오래 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고
그러고 보면 또 많은 것들이 그런 듯 싶다
그러나 대학이란 곳은 8년을 다녔지만 하나도 지겹지 않았고
시를 10년을 썼지만 지겹지 않다
시를 쓰는 것이 지겹지 않은 이유는 결국,
다른 모든 것을 지겨워하더라도, 너 자신만큼은 지겨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내가 나에게 묻지만, 잠시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온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시를 쓰면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러면서 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바람둥이 오늘은 애처가 내일은 우주비행사 모레는 버스운전사
시를 쓰다 지겨울 때는
어제 쓴 시와 오늘 쓴 시가 비슷할 때, 어제 만난 나와 오늘 만난 내가 닮았을 때
또 익히 아는 그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어 질 때
아, 지겨운 놈
지겨워봤자 그저 지겨운 놈이겠지 그러나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 지겨워서가 아닌가, 하면
퍼뜩 정신이 들며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지겨워
지겨운 하루였다
대충 예상했던 일을 하고 예상했던 시간까지 일을 하고 예상했던 사람들과 일을 하고
예상했던 정도의 발전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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