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일하는 이곳 사람들은 매사에 reason-why를 중요시한다

일의 특성이 '설득'이다보니 주된 무기로서 reason-why를 드는 것이

일상화되다 못해 인생화된 듯 하기도 하다

 

이들은, 마치, 인생이 reason-why다.

 

타인의 인생에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지 일을 열심히 수행한 결과로서 인생이 reason-why화 된다는 건

좀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reason-why란 다만

어떤 일, 업무, 상황 등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한 단계,

약속 장치, 같은 것들인데,

인생이란 그런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도, 단일하고 절대적인 reason-why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상대적일 뿐더러 보는 사람에 따라서 reason-why의 영향력도 다르다

무슨 말인가 하면

reason-why의 비교에 따른 결정이 어떤 확실함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reason-why란 수 많은 결정 요인들 중 하나일 뿐

단일한 진리나 진실, 이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얘기하는 reason-why는 결국

 이 상사가 자신의 상사에게 얘기하기 위한 reason-why이며

그 상사가 광고주에게 얘기하기 위한 reason-why이고,

다시 말하면

 

'단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reason-why가 자체로서 갖는 가치라기 보다는

'필요성'이라는 성격이 지닌 가치를 위한 존재 정도?

 

그러니까 다분히 process적이고, 사무적이고, 합리적이고, 거래적인 개념인데

그것이 인생화되는 것은 좀 꺼림칙하다

 

 

 

 

2

 

오늘 낮에 동생이 문자를 보내서 형, 20만원 있으면 꿔줘

하길래 통장 다 털어도 10만원 뿐이 없는데...

라고 답장을 보냈다

통장에 있던 그 돈들이 다 어디갔는지도 몹시 미스테리하지만

문득 reason-why라고는 없이 들이대는 동생의 돈꿔달라는 메시지에

대체 이녀석은 reason-why도 없이 뭘 믿고 돈을 꿔달라지? 라는 약간의 분노가 생겼다

(몹시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장실 변기에 10분동안 앉아있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굳이 생각해보자면 동생의 reason-why는 '동생'이라는 reason-why이며

25년이라는 경험치의 reason-why이며, 믿음이거나 신뢰라는 reason-why이며

최대의 호사스러운 해석으로는

나를 믿고 의지하는 형으로서 부탁하는데에 구질하게 이유 따위는 부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 테다

 

나는 앞으로도 동생이 내게 이유 따위는 없이, 근거도 없이

뭔가를 부탁하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로 갑자기 20만원을 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치료비로 급하게 20만원이 필요해, 라는 이유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하는 망상에 잠시 잠겼었다

 

혹시, 뭔가를 사거나, 누군가와 놀기 위한 돈이 필요한 것일 지도 모른다

 

동생은 왜 20만원이 필요했던 걸까?

 

 

 

 

 

ps. 삶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대화에도, 주장에도 이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reason-why라는 말을 들으면, 자- 이제 일하자- 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일부 전문직에서 사용하는 이 용어가 자칫 일반화되거나 인생화되는 사태는 없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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