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밀국수를 먹고 있었지

 

 

점심이었다

비가 올거라고, 서울 시민 중 6백만 명 정도가 생각할

여름날이었다

뼈가 찐득거린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들러붙었다

모밀국수를 먹고 있었다

상쾌한 맛이 나는

맛 없는 모밀국수였다

섬유를 씹듯이 잘근잘근 씹어넘겼다

빨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뼈가 찐득거리는 세탁기

모밀국수를 먹고 배를 돌리는 세탁기

 

모밀을 먹으면 몸이 끓어오르는 여자애 하나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주인집 아저씨가 손님들 모르게 모밀을 섞어 팔던 뽕잎칼국수집에서

한젓가락 먹다 말고 응급실로 달려가던 여자애

가끔씩 그 여자애를 생각할, 서울 시민 중 여섯 명 정도의 남자를 떠올리며

고장난 듯 덜덜덜덜 떨었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세탁기 안에서

모밀국수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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