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6일에 쓴 것

 

 

 

 


책 밭에 가느다란 잎사귀 자란다



나는 지금껏 밭에 들어간 기분을 알지 못한다. 태생이 서울이기도 하려니와 간혹 밭을 휘저어도 밭에 들어선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씨를 뿌리거나 채소를 거두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는 밭의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어느 한 구석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내가 들어서는 밭이 한 해의 모습 중 어느 부위인지, 밭에서의 호흡이란 어떤 것인지 눈치 채기가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겨울이 막 지난 밭은 그저 흙 땅으로만 보여 실감이 나지 않고, 새싹이 나올 즈음이면 조심스러워 밭을 밟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나로서는 세숫대야 물을 부시듯 그 안에 성큼성큼 들어서는 농부들이 도인만큼이나 신비하게 여겨지고는 한다.

그러나 한편, 삶터의 곳곳에서 ‘이런 것이 밭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비가 내리는 날의 도서관은, 책들이 촉촉이 비를 맞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가지런히 줄 맞춰 있는 책장들은 사이사이에 고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곳에서만큼은 흙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씨앗을 뿌려보지 못한 사람도 농부의 모습이 된다. 밭의 주인이 햇볕, 물, 바람, 흙과 채소 그리고 농부라면, 도서관의 주인은 바람 불지 않는 막막한 공기와 자라지 않는 책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도서관에서 자라는 것은 대부분 형태가 없다. 주기적으로 새 책들이 들어와 밭을 매우고 지혜의 영양분을 심어놓는다. 그러나 책이라는 물질이 생명을 가지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휴관 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자라나는 그것은, 책장 사이사이에서 자라며, 뻑뻑한 눈을 비벼가며 글을 읽는 사람들의 손등에 줄기를 감고 자란다. 책들은 몇 권만 쌓여도 어느 농작물보다 무겁다. 파릇파릇한 새 책들에 자칫 손가락을 베이기도 한다. 도서관의 작물들은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각종 이미지들을 읽는 이들의 머릿속에 옮겨 심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갖는다. 지식의 획득이나, 여가의 충족, 흥미를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그들의 복장 또한 가지각색이다.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에서부터 고급 안경에 쓰리 피스 양복을 갖춰 입고 오기도 한다. 완두콩 같은 아이들부터 피망 같은 청소년 수박 같은 아주머니와 대추 같은 노인들이 모두 이곳을 찾는다. 어디서 무얼 타고 왔으며, 밥은 먹고 왔는지, 어떤 기분으로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서가를 떠듬거리며 돌아다니는 이들은 누에 잎을 따듯이 섬세하며 신중한 모습이다.

3월 입학식이면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학생과 부모들은 사진을 찍는다. 고등학교까지는 그저 풍경 좋은 곳을 찾아다니지만, 대학 입학식 즈음이면 다르다. 호기심 많은 학생과 부모들은 대학 도서관도 한 번 둘러 찾아보고 사진도 찍는다. 부모들은 이미 훌륭한 농사꾼들이다. 자식 농사꾼들은 도서관 앞에서 사진 찍으며, ‘앞으로 내 아이가 이곳을 드나들며 책을 보고 견문을 넓히고 큰 사람이 되어가겠구나’라고 흐뭇한 생각을 한 번쯤 가져본다. 또 학생들은 도서관 앞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학창생활을 계획해보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농부의 마음이 아닐까.

나는 농부들이 배추밭 앞에서, 깊은 흙이 채 녹지 않은 시커먼 흙 밭에서 그저 씨앗만 보고 배추만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농부들은 한 해를 바라보며, 제 식구들을 둘러볼 테고, 친척 누구와 자식 누구, 이웃집 누구누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 바라봄과 둘러봄에, 바스락거리며 한 해 농사를 어림 짚어보는 마음 사이사이에, 밭을 찾는 진정한 이유가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방식이 흙보다 책을 요구하면서, 근대 사회가 풍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 상이한 모습으로 바뀌어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봄이 되어 한 해를 설계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은 농부의 속내를 닮아있다.

봄이란 가장 막막한 곳에서부터 온다. 가장 어둡고 서늘한 시간을 지나 깜빡 깜빡이며 봄이 불 붙는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싶고, 조금은 더 활기차고 싶고, 조금은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에 불이 붙는다. 따사로운 햇볕과 훈훈한 공기는 이런 마음을 부추기며, 바깥으로, 바깥으로, 사람을 부른다. 그러나 나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도서관에서 봄을 체감한다. 하루에 몇 번만 열리고 닫히는 도서관 작은 창가에서 새소리를 듣는다. 책들은 아주 오래전에 죽은 나무들이다. 책장 한 장 한 장이 이전에는 단풍나무의 껍데기였으며, 측백나무의 물관이었을 것이다. 이 죽은 나무들의 구겨지고 먼지 쌓인 책장 사이에서, 유전공학의 비밀이라든가, 아리조나주의 생태계라든가, 윤동주 시인이라든가, 근대철학이라든가, 농경민족의 삶 등이 쌔근쌔근 자라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도서관이야말로 봄을 맞이하기에 진정 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 어느 농촌관련 공기업에서 청탁받아 써본 에세~ 이. 내가 썼지만 참 점잖게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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