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0일에 씀....

 

 



* 성행위를 한다는 것을, '허락한다', '드린다', '준다', '하게 한다', '시켜드린다', '바친다' 등의 말로 표현하는 여성들이 눈에 띄는데, 그런 여자는 자각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자신의 육체는 남자의 성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도구 또는 상품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비록 매춘부처럼 노골적으로 대금을 받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 정신의 측면에서 매춘부와 다를 바가 없다. 성행위를 남자로 하여금 '시켜드리는'(하게 해드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에서, 그녀는 그 대상으로서 남자가 자신을 쭉 '사랑해준다'든가, '책임을 지고 결혼해 준다'든가를 바라고 있는 셈으로 그녀와 매춘부 사이의 차이는 손님을 신용해서 외상으로 먹고 마시게 해주는 레스토랑과, 식권을 사게 해서 선금을 받는 레스토랑 사이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 기시다 슈 <게름뱅이 정신분석> 중.





아주 어려서부터 생각했던 것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것은 조건 없는 애정이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려서 학교에서 배우기를 부모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조건없는 사랑이었을 지는 모르지만, 자식으로서 느끼기에는 조건 있는 사랑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물건 하나를 사주더라도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 동생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해 등의 말을 꼭 덧붙여 끌어안아야 했다. 학교에서는 늘, 부모님들이 열심히 땀 흘려 벌어오신 돈으로 공부하는 것이니까, 라는 규제를 귀에 쳐박으려고 들었다.

나는 조건 없는 애정이 조건 있는 애정보다 더 훌륭한 애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서로가 흡족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이 갖춰진 애정이 보다 긍정적이다. 그 이유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의 거래에는 언제나 불공정 조건이 자식의 의사와 무관하게 채결되기 때문이다.

연애에 있어서도 그런데, 무조건적 사랑이 작용하는 연애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무조건적 사랑을 요구하는 순간, 이 요구가 곧 조건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무조건적 사랑이 성립하려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댓가나 바라는 것 없이 온전히 자신의 사랑만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이것을 목격했다거나, 자신은 실천 할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 할 수 있는 스무 살 이상의 남녀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류의 애정은, 무조건적 애정의 무분별함과 불가함을 이해하고, 보다 공정하며 보다 상보적인 조건을 자연스럽게 연마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고 이자의 책을 읽다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기시다 슈가 말한 것처럼, 하게 해줄테니까 너 역시 나에게 ( )를 해줘, 라는 일부 여성의 암묵적 거래를 굳이 나쁘게 볼 것은 없다. 다만, 본인은 무조건 애정인 것처럼 자가당착에 빠져서 순수하게 애정으로 '하게 해준다'는 착각을 하는 것은 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자신을 솔직 분명하게 바라보고,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솔직 분명하게 되는 때가, 언젠가 오기는 올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런가, 하며 잠시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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