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게 지다
가슴에 유서를 품고 살던 날들이 있었다
지지리도 못나서 나는
네 창가의 시클라멘도
네 가슴의 장미도 되지 못해서
석 달도 넘게 우체부가 오지 않은 가문 날
연애도 혁명도 먼먼 날
잡풀 우거진 언덕에서
나를 재운 것은 스물세 알의 아달린이었으나
풀잎 이슬로 깨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되돌아온 애인의 미소가 아니었다
새 세상의 낭보는 더더욱 아니었다
쇠잔등에 돋은 힘줄 같은 쇠비름,
그 노란 꽃이었다
원기소알보다도 작은
지가 무슨 꽃이라고
저도 무슨 꽃이라고
저마다 하늘 하나씩 받쳐 든 쇠비름
가막사리 앉은뱅이 제비꽃 어깨 겯고 어우러진
야생초꽃들의 비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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