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 사무엘 베케트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나를 울리는 무생물들이 있었다.

 

사무엘 베케트, <첫사랑> 중

 

 

 

 

 

하늘이 땅보다 인정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내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하늘보다는 바로 땅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 <진정제> 중

 

 

 

 


나는 내가 할 뻔했던 이야기, 말하자면 끝낼 용기도 그렇다고 계속할 힘도 없었으면서 할 뻔했던, 내 삶을 본뜬 그 이야기를, 섭섭함도 없이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엘 베케트, <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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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컴퓨터가 없는 나는 다시금 9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동대문 도서관에 와서 컴퓨터를 만지작거린다.

문서프로그램이 뭐가 있는가 봤더니 한글 97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써본 문서작성 프로그램, 그것이 한글97이었다.

 

내가 97년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어떤 레포트들은 문서작성을 해서 출력 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무척 겁먹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또, 그랬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두꺼운 도화지에 키보드 그림이 그려진 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타자치는 법을 배우던 그런 시대의 어린이였으니까.

 

이렇게 그때를 회상하니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그것은 97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대다수가 분당 타자수 200이 되지 않았다.

나는 60이었다.

 

새내기들이 방과 후 하는 일이란

교내 PC실에 몰려가서

한글 타자 연습을 게임이라도 하듯이 후다다닥 치면서

그날 그날 120, 180, 215, 그렇게 타자 속도를 늘려가는 것이었다.

 

당시의 선배들이란

타자의 빠르기로 존경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서 매우 높은 인기를 얻었던 쇼 프로그램이

바로, 강호동이 사회를 맡아 전국 대학교를 순회하면서

이런 저런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 인기를 얻었던 것은

타자속도 경신에 도전하는 각 대학 최고의 키보디스트(그들을 무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분당 천타수를 넘나드는 그들은 오늘날 프로게이머만큼이나 신기를 지닌 인물들이었다)들이었다.

 

그 당시 처음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연극이라고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로 희곡을 읽은 것인데

감동받았다.

 

시간이 지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이 되었는데

연극을 보거나 베케트의 희곡을 읽는 일은 불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 것인지

뼈를 주고 살을 취한 것인지

 

얻은 것 없이 주기만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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