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신입사원 들어가기 힘들다 힘들다지만

정작 내가 그 입장일 때는 어떻게 되겠지 뭐, 안되면 말고,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후배가 일 찾느라 애쓰는 걸 보니

이게 진짜 어찌된 일이냐 싶다.

나야 본래 ‘안빈낙도’를 꿈 꾸던 사람이지만

이 후배는 ‘짧고 굵게’를 강조하며

자존심만큼은 world class 였는데

얼마 전, 어찌어찌 내가 소개해 준데다 이력서를 내고 전화하더니

“난 진짜 아무 것도 안 바라고 일만 시켜줬으면 좋겠어, 그 쪽 회사 잘될 것 같애?”

하고 묻는다.

내가 배고프다면 시계며 카메라 같은 것 맡기고서 고기나 회를 사주면서

“선배면 선배답게 좀 당당해 봐 개새끼야!”

라고 질타하던 녀석인데.

기분 좋을 땐 ‘형’, 기분 나쁠 땐 ‘씹새끼’라고 나를 부르던 이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형님’ ‘형님’ 이러면서 루트를 찾아달라고 한다.

취업 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지고 떨어지면서

자존심과 자신감도 함께 떨어지고 떨어져 나가는가 보다.

(그런 척 하는 거든가)

젠장, 원래대로라면

우린 지금쯤 함께 원양어선을 타고 있었을 텐데

 

소규모대행사에서는 신입 뽑기를 꺼려하니

자연스레, 신입을 뽑을 정도의 메이저 대행사에 원서를 넣게 된다.

그런데 한 편, 메이저 대행사의 신입 뽑는 과정을 볼 때면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왜 카피라이터를 카피라이터가 뽑지 않을까?

 

디자이너의 경우는 그래도 덜하지만

신입 기획과 신입 카피라이터를 보았을 때

어차피 신입인 이들을 모두 기획을 시키나, 모두 카피를 시키나

배우고 익혀서 어느 만큼은 다 제 몫을 해낼 것 같다.

광고를 가르칠 때 흔히 써먹는 재수 없는 표현 중

 

여기엔 ‘결코 이것이 아니고선 안될 것’이 들어가야 하는 거야!

이게 여기에도 들어갈 수 있고 저기에도 들어 갈 수 있으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라는 것이 있는데

정작 이것이

광고회사 사람 뽑을 때는 그리 적용이 되질 않는 것 같다.

기획이나 카피로 들어온 분들을 보면

상당히 공통분모의 면적이 커서

여기도 저기도 될 것만 같으니깐.

 

더불어 한 가지 궁금한 건,

제작에서도 크리, 기획에서도 크리, 경영에서까지 크리를 외치는 광고회사에서

사원 뽑는 것은 그리 크리에이티브 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메이저 대행사일수록 더.

 

그야 물론 여기에는

기업방침이나, 이익을 위한 원칙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거나

혹은, 광고하는 회사 이기 이전에 비즈니스센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크리-하자고.

 

그야 물론 여기의 크리-에는

‘이익을 위한’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크리-란 본래 ‘안정’보다는 ‘도전’에 어울리는 단어인데

‘이익을 위한’이란 의미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빌미로

점차, 크리- 란 단어를 부식시켜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뭐 한국말도 아닌데 상관은 없지만.

(약간 창피하긴 해도, 정작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안 창피한가 보드만)

 

메이저 대행사에서 신입을 뽑는 양상을 보면

내 눈엔 한 가지 기준만이 분명해 보인다.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

혹은

좀 더 똑똑하고 좀 더 성실해 보이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들 위주로 뽑아서

그런 이들을 뽑는 자신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똑똑했다는 걸 강조하려는 걸까?

 

내 개인적으로는

45살 넘어서는 사람들은 신입사원 면접을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떠나서

실무와 좀 거리가 있거나, 감각이 둔화된 사람들은 신입사원 면접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나의 망상이거나 희망이거나 꿈이거나 고지식한 단면일지 모르지만,

망상적이고 희망적이고 꿈적이며 고지식한 면 때문에 나는 이 일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우리 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라는 말로 탈락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다.

당신은 우리 회사 카피라이터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 AE/AP로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물론 이 말은

카피라이터가 카피라이터 희망자에게

AE/AP가 AE/AP 희망자에게 하는 것이 옳다.

인사과 직원이 희망 직종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그 해 신입사원들이 보고 배운다.

(나는 그래서 이미 배웠다, 배우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카피라이터를 한답시고 명함 들고 다니며

이 시간까지 AIG마스터플랜 카피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볼 수 있는 건

나를 발견하고 가르쳐주고 기회를 주고 들이밀어 준 것이

14년 차의 현직 CD겸 카피라이터였기 때문이다.

 

그분이 16년 내지 17년 차의 광고회사 간부여서

본부장이나 이사급의 관리자로서 나와 만났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원양어선을 타고 있었을 것이다.

(손이 다 텄겠네 그랬다면, 여긴 따듯하지만)

그랬더라면 cw로서의 자신의 감을 확신하지 못했을 테고

행여나 관리자로서의 자신에게 기스가 나지 않을까 회피했을 지도 모른다.

(저 임원이 자기 빽으로 누구 데려 왔다더라…는 식으로 인한 기스)

그분이 현직 카피라이터였고, 그로 인한 신념이 있던 분이었기 때문에

긁어도 기스 나지 않을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가올 겨울을 이렇게 따듯하게 사무실에서 맞이하고 있다.

 

내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광고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지, 우습다.

그냥 지금의 내 눈에 보이는 바를 지금 말해두는 것뿐이다.

 

카피라이터는 카피라이터가 뽑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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