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한다.

천 명도 넘으려나? (나만 웃는 겨?)

 

이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진로를 결정하고,

목표로 하는 직장까지 마음 속에 품으면서,

씩씩하게 광고홍학과로 몰려드는 모습은 참으로 흐뭇하다.

 

그래, 그런 너희들이 있으니까

이 나라 대학교와 사설 교육기관들이 먹고 사는 거겠지.

 

딱히 뭘 배우려 하고, 또 딱히 뭘 가르치려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내 눈에 비친

열성적인 광고학과생들을 볼 때, 이들의 목적이

 

1번, 광고를 공부하는 것

2번, 원하는 광고회사에 들어가는 것

 

중에 2번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둘 모두를 위한 곳이라는 건 알고 있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실용 학과이다 보니

취업이라는 결과를 위한 학문,

으로 자꾸만 보여지는 것일 뿐이다. 내 눈에.

 

나는 당연히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은 기획 쪽을 희망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물론 수업들의 상당수가 제작 쪽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그건 다만, 광고제작의 이해를 위한 것이고

실제로 제작 일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거나

학생들이 실제로 제작 일을 하려고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물론 나의 특기인 편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고홍보학과가 지니고 있는 모순성 때문이기도 하다.

 

Baby라는 소년이 있다고 하자.

18세에 이 소년은 광고제작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19세에 수능시험을 치르고 원하던 데로 광고홍보학과에 들어간다.

20세부터 광고홍보학과에서 광고수업을 듣는다.

공모전에 참여하고, 영어공부도 한다.

졸업 후 광고아카데미를 거쳐 광고대행사 제작팀에 들어간다.

 

광고회사 제작팀에 들어가려 한다는 것은 creative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이 Baby의 life는 전혀 creative한 면이 없어 보인다.

배가 고플 땐? 밥을 먹어라, 라는 상식적인 답안처럼

광고회사 들어갈 땐? 광고홍보학과 들어가라, 라는 상식적인 패턴을 보면

, 의아하다.

 

다시 말하면, creative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삶의 과정은 전혀 creative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략적 creative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도 동일하며 상식적인 그것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실제 제작팀에는

이런 도식적인 과정을 통해 creative를 하고 있는 분들은 드문 것 같다.

 

“미대 조소과를 나와서 디자이너로 입사했다가 카피로 전업한 만화작가가 꿈인 여성 카피라이터”

 

“영화감독의 꿈을 가지고 영국유학까지 갔다가 광고 쪽에 마음을 빼앗겨 PD를 하려 했으나 TO가 없어 디자이너로 취업 한 뒤 1년 만에 원하던 PD로 전업한 PD.”

 

“야구선수가 꿈이었으며 이 백 명도 넘는 여성과 교재 해봤다는, 아직까지도 주말이면 빠짐없이 동네 야구팀에 나가 선발투수와 4번타자를 동시에 해내며, 난생 처음 만루홈런 쳤다고 자랑하는 플레이보이 PD”

 

“발명가가 꿈인데 어쩌다 보니 카피라이터를 10년 넘게 하고 있다는 카피라이터 출신 CD, 남들 다 선망하는 CD못해먹겠다며 휴직계를 내고는 목수가 되기 위해 잠적 중인 분”

 

“지방 소도시 만화가게에서 기숙하면서 손님들 라면이나 삶아주면서 듣고 싶은 음악 듣고 만화책 평생 보면서 늙어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그 모습을 하도 낙오자취급 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렇다면 보란 듯이 너희들이 선망하는 직종에 근무한 뒤 난 이 따위 필요 없어, 라고 때려 치고서는 원래대로 만화가게에서 일할 테다, 라고 말하는 카피라이터”

 

작년 11월부터 1년 사이에 만났던 광고제작 일을 하시는 분들 중 기억 나는 몇 몇 분들이다.

 

 

학교 다닐 때, 군대 마치고 대학 3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학보사 객원기자를 한 적이 있다.

한 학기 동안 문화인을 선정해서, 그분들만 취재하러 다니는 일이었다.

그들 눈엔 내가 문화인 관련 기사를 잘 써낼 것 같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마임>을 본업으로 시작한

춘천국제마임축제의 총예술감독이자 한국 1대 마임이스트인 유진규씨와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남들이 말하던 좋은 대학의 비젼 있는 학과에 다니던 그는

교내 극단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극에 푹 빠졌고,

결국 연극하려고 학교를 때려치웠다고 한다.

 

, 흔한 스토리이다.

 

집안에서 자퇴를 심하게 반대해서 자연스럽게 집과 소식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이대로 가족과 멀어지는 게 무섭지 않았나요? 하고 물었더니

 

“무언가를 하겠다! 라는 거는 그거 빼고는 다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 거다!”라는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 인터뷰 후, 얼마 지나서, 나는 ‘유진규네 몸짓’이라는 마임극단 내에서 놀고 있는

아마츄어 마임동아리에 들어갔고 3년 가량, 같이 놀았다.

 

나중에 어딘가에 면접을 보게 된다면

남들 다 양복 입고서 정중한 말투로 질문에 대답할 때

나는 옷을 훌러덩 벗고 팬티만 입은 알몸으로

이런 저런 몸짓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떨어지면?

- 대관절 면접 떨어질 까 두려워서 표현하고자 하는 걸 참는 크리에이터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얘기가 샜다.

내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외롭다 보니 내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카피는 목적성이 강한 글이라서,

카피 쓰는 것이 몸에 베어 들면, 목적 없는 문장을 쓰는 것이 어색해진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지금 하는 것들은 죄다 별 목적 없는 글일 뿐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은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광고에 푹 빠진 사람을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드는 것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을 광고에 푹 빠지게 만드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광고 제작에 뜻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만의 고유한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을 키우기도 전에

광고라는 제한된 틀부터 배우는 것을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기획과 제작의 관계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많은데

나는 그냥 형과 동생 정도의 관계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형이 있으니까,

동생은 지 맘대로 놀아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동생만 좋은가? 훗-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