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춘천에서 버스를 타고 
버스와 함께 비를 맞으며 굴곡진 도로를 지져가다가
한 할머니가 쑥갓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앞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나는 앞자리의 등받이 끄트머리에 팔을 대고
그 위에 고개를 올린 채로 창밖을 보다가
내 바로 앞에 앉은 할머니의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냄새.
옛날 샴푸와 옛날 로션 냄새.
그리고 식어버린 
삶은 고구마 같은 피부.

이렇게 가까이서 
혀를 내밀면 핥을 듯한 거리에서
할머니를 마주하기는 얼마만일까.
볼을 만지고 싶었는데
볼을 만지는 찰라에 죽어버린 할머니가
다시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는데
결국 볼을 만지지는 못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내 표정을 읽고 
알 것 같다는 웃음을 지었는데 그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보고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떠올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죽을 날을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의 웃음.

집에 와서 
집에 올 때 쯤에야 비로소
찬찬히 걸어올라오는 아주 어릴 적의 기억
할머니의 뒷자리에서 고개를 묻고
동대문으로 운동화 사러 가던...

 

 

 

 

 

PS.

2003년에 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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