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은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가?

 

 

 

 

 

 

 

연애를 하던 중에 뭔가 답답함이 생길 경우

간혹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은 자신의 친구로부터 조언을 구하고는 한다.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기고 이를 해결하려고 할 때

왜 자신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할까?

그야 딱히 다른 누구 마땅한 사람이 없고

그래도 친구가 나와 제일 잘 통하니까 그런 것일 테다.

 

문제는, 조언을 구하는 이 친구라는 대상이

나와 잘 통하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라는 데 있다.

 

보통, 친구들끼리는 비슷한 면이 많고

성격이나 가치관, 환경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비슷하다.

 

가뜩이나 자신과 비슷한 면이 많은 친구에게

연애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연애에 대해서도 친구와 비슷해지는 결과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친구의 조언을 듣고 따를 경우

연애에 있어서도 친구와 비슷해지고 닮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에게 연애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이 친구와 같은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만은 세계 어느 국민보다 보수적이라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친구라는 대상은 그만큼 일반적인 조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나만의 특별한 연애를 하고 싶어할 지 모르지만

이런 조언의 과정을 통해서

누구라도 비슷한 연애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마치 연애의 이상은 남들과 다름 없는 이라도 되는 듯이.

 

추측하자면, 연애에 있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뭔가 뜻대로 잘 안 되는 것 같고

좋아질 방법이 어딘가 있을 것 같고

마음이 답답하고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얻고자 조언을 바라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저 얘기하기 쉬운 친구를 찾기보다

내가 모델링 할만한 연애를 경험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적당할 듯 하다.

내게 가장 편한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조언을 해줄 것인가,

내가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해줄 것인가,

를 구분 지어야 할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을 잘 알아줄 것 같은 이유로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하소연의 차원일 것이다.

 

나의 경우, 연애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진로, 학업, 직장, 친구 등)의 일들에 있어서

조언을 구하지도 않고, 조언을 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바라는 나만의 이상적인 나를 지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칫 일반화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조언을 듣되 선별해서 받아들이면 될 테지만, 내가 아는 나의 좁은 심성으로는

자신이 없다.

 

군대에서 그토록 내내 경각심을 갖고 물들지 않도록 주의했지만

결국 당당히 예비역의 물이 들어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지 않은가.

그건 거의 개조의 수준이고, 이것은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지고 있다.

 

조언을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대부분

편하고 자기를 잘 알아줄 것 같아서 친구니까 조언을 청하기 때문에

그의 이상적인 목표를 충족시켜줄 조언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나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서 조언을 구한다고 한들

내가 조언을 해줄 리 없다.

나는 늘, 나만의 특별한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누가 나를 닮으려 하는 것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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