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고추 이야기
인정하고 안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련마는 나는 늘
여름이 오면, 이제 여름이 왔음을 인정해야 겠다, 고 생각한다.
여름이 오면 여러 모로 불편한 것들이 생기는데
모기와 벌레와 땀과 잠과 관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팬티 속에 땀이 차서 불쾌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발은 가끔 맨살을 드러내어 바람에 말려줄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 속에서
고추를 내놓고 말리기란 쉽지 않다.
고추에 땀이 차서 불쾌할 경우
고추를 꺼내놓고 씻거나 땀을 말리려는 욕구는 당연한데
이것을 실행할 경우에는 변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변태를 지칭 할 때 그것은
어떤 욕구를 느낀다,는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욕구를 드러낸다,는 것 때문에 그러는 지도 모르겠다.
그럴 경우, 이 변태,라 함은
정상적이지 않은 개인적 감정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회성을 개의치 않거나 흔들 가능성이 있는 이른 바,
개인적 사회 관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아무튼 고추를 말리고 싶은 나는 차마 그대로는 못하겠고
말이라도 이렇게 꺼내면 말라 질까 생각한다.
소설가건 시인이건
어느 영역 이상에 도달한 사람들은
언어로 이루어진 ‘스토리, 인간, 구성, 사회’ 보다
‘언어’ 자체에 빠져들게 된다.
고추를 말리고 싶어하는 감정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언어’가 실제 현상에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관찰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이건 다시 말해, 내가 싫어하던 종류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남자의 성기는 고추와 불알로 구분된다.
의학적이라든지 사회적 분류는 따로 책을 찾아보기 바라며
내 눈에는 아무튼 고추와 불알, 이렇게 둘로 구분이 된다.
고추는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의 정 중앙과 배꼽 사이의 중앙 정도에
위치하는데 실상, 중앙보다는 조금 더 아래쪽에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여자의 성기가 다리와 다리 사이에 감춰지는 것과 달리
남자의 성기는 다리와 다리를 겹쳐놓을 경우, 그 위로 돌출되는 지점에 있다.
문제는 고추 바로 밑에 불알이 달려있기 때문인데
고추와 불알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고
불알의 끝과 고추의 끝이 맞닿아 있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고추와 불알은 늘 겹쳐져서 자리하게 되는데
팬티와 바지를 통해 압착되는 이 두 부위는
동굴 속에서 서로 껴안은 채 공포에 짓눌려 있는 두 형제처럼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때문에 고추와 불알이 겹쳐지는 부위에 땀이 많이 차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고추의 살과 불알의 살은 비슷한 면이 있는데
날씨 변화와 감정 변화에 맞춰 활발하게 변화를 일으키는 성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넉넉한 면적의 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허벅지나 팔뚝의 살처럼 근육의 변동이 크지 않은 부위의 살은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지만,
고추와 불알을 이루고 있는 살들은 평소에는 남아도는 살의 면적으로 인해
여러 겹 겹쳐져서 축 늘어지게 되는 것인데,
이것 자체로도 보온효과를 내서 그런지 더욱 땀이 맺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때로는 고추를 불알로부터 떨어뜨려 놓기 위해
고추를 180도 들어 올린 뒤 팬티를 입는데
그럴 경우 고추는 위쪽 아랫배에 붙게 되어 불알과 이별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별에도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경험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서로 잠시 이별한 고추와 불알이 해방감과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들은 자신이 이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조만간 겹쳐질 것도 안다, 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난다는 건,
당장 지금의 즉각즉각의 감정도 상태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이전과 지금의 이후를 공감각적으로 느끼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내 손이 내 입과 코를 찾아갈 수 있는 것처럼,
술에 아무리 취해서도 내가 집을 찾아가리라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더위로 인해 180도 올려진 고추가 ‘너와 헤어져서 아주 시원하다~’라고 느껴도
그것이 당분간이라는 것을 예감하는 불알처럼…
그나저나 내가 궁금한 것은
여자들의 성기도 여름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본 여자의 성기 또한, 확장을 감안해서 충분한 면적이 주름진 상태로 되어 있고
남자의 성기가 다리보다 그나마 약간 위에 달려있는 반면
여자의 성기는 다리와 다리 사이에 있으니 더 그늘지고 더 더워 보이는 것이다.
언젠가 정말 이런 얘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보지를 갖고 있는 여자들이
정작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별로 예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당분간은 자유롭게 이런 얘기를 나누기는 힘들 것 같다.
어느 무식하고 몸종 같은 남자들이 간혹 여자의 성기를 조개에 비유하며
우스갯소리를 하며 말이랍시고 뭔가를 발성하는 듯도 하지만
그건 3만km떨어진 어느 폐 탄광의 시멘트 실밥 터지는 소리만도 못한 것 같고
여자의 성기는 분명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남녀의 성기를 촬영해온 무슨 사진예술가도 있다지만,
그것이 꼭 예술가의 눈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부드러움과 주름과 벌어짐과 속삭임과 감정까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자가 자신의 성기에 대해 ‘더럽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렇게 더운 날도 잘 참아주고 있지 않은가, 성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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