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일까, 괴로워해야 할 일일까?

 

자신의 삶에서

실패하거나, 떨어지는 경험이 드물어진다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일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일까?

 

스스로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을 찾으려 할 때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 원하는 방향의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아마도 이 글의 결론을 실패 따위 넘어서버리자 정도로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납득하도록 생각을 몰아간다는 것은

기분이 좋아야 할 일일까, 안타까워야 할 일일까?

 

오늘 도로주행 시험을 보았는데, 너무나 무참하게

시험장 밖으로 채 3미터도 나가기 전에 탈락되어 버렸다.

그것도 몇 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 한 점 의심 조차 없이,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2시간이 지나도록 당황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당황함의 원인에는

근래 얼마 동안 실패라고 할 것을 별로 겪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정도로 원인을 생각할 수 있는데

무엇에서건 충분히 준비를 하고 또 운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 경우와,

떨어질만한 것, 위험한 것,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에 도전한 적이 없는 경우이다.

 

그리고 물론 이 둘의 경우가

자연스럽게 절충되어, 그럭저럭 순탄하게 삶이 진행되어 가던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

성인이 되면서부터 강요되는 시험이나 평가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실패가 많았던 시기는 중고등학교 때인데

이때 내게는 원하지 않은 강요된 각종 시험들이 줄기차게 몰아 닥쳤고,

내가 원하지 않은 시험에 떨어지는 것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의식이,

실패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청소년기란,

나도 친구도 부모도 주변도 모두 실패하는 것처럼만 보였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 목표를 조정해가며

또 스스로가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는 자유(미약하나마) 속에서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실연을 하고 그랬으므로

더구나 사춘기 시절의 실패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었으므로

힘들었지만, 당황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로주행 한 번 떨어진 것이 어째서 이토록 당황스러울까?

이 점이 이상했는데

점차, 어째서 실패가 내 삶에서 그렇게 멀어졌을까?

라는 생각에 신경이 쓰인다.

 

내가 원하는 도전 같은 것들이,

붙고 떨어지고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언제나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것들이어서 그런 것도 같다.

예를 들면, 무전여행이나

새로운 영역에의 탐구는

굳이 실패를 말할 것 없이, 시도하는 자체만으로

삶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한 친구에게 메신져로

도로주행 떨어졌다는 얘기를 했더니,

죽어

미흡한 인간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간 과장하자면, 눈물이 맺힐 정도였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친구가 말을 걸어 왔고

미흡한 인간이라는 단서를 전해 준 것이

어쩐지 감동적이다.

 

어째서

미흡한 인간

이라는 걸 잊고 살아왔을까

 

역시나 적당히 내가 뽐낼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 놓고

그 안에서만 기고만장 해 있었던 것 같다.

 

이 참에

카레이서에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카레이서를 꿈꾸는 나는

첫 번째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

실패 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한 걸음

아주 정확하게

내디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남은 삶에서

견뎌야 할 것은,

몇 번, 혹은 수 십 번의 실패가 아니라

실패 없이 살고 싶어하는

후진 기어의 마인드일 것이다.

 

역시나, 글의 결론은

실패 따위 연연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성숙함, 넘어서려는 의지, 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관조의 정신

쪽으로 종착지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건 마음이 아프다.

탐색해가며 결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놓쳤던 결론을 떠올려서 찾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부터

이렇게 하자, 고 했던 그런 결론에 대해

여전히 의심 없이 수긍한다는 것.

 

내가 잘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비교점을

가까운 주위에서 찾지 않기로 한 것을

여전히 지키려 한다는 것.

 

약간 기쁜 실패다.

 

지구는 제트기의 3배 속도로 자전을 하고 있으므로,

나도 빙글빙글 열심히 굴러야지.

 

굴러야지, 그런데 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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