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의 낮

 

 

 

햇빛이 상냥한 거리에

잘 걷고 잘 말하고 잘 생긴 사람들이 가득하다

밤 기운에 달라붙어 있던 잡균들을

햇살의 비질에 쓸어버리며

탁탁. 어깨를 털 듯 걸어 다니는 사람들

잘 웃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기쁨에 미친 사람들

슬픔이 두려워 깊은 밤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흡혈귀가 대낮이면 관을 덮고

축축한 꿈을 꾸는 것처럼

양말 속 같은 밤이 오면

실밥마저 말려들어가 숨 죽이고

슬픔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숨소리

 

저 입으로 어떻게 밥을 먹나

싶게 입이 붓고 얼굴 반이 허물어진 괴물 같은 사람을

지하도에서 지나쳤다

낮에 만난 흡혈귀처럼 낯설고 슬픈 풍경

나는 잠실 방향으로, 그는 서울대역 방향으로

낮에는 그가 괴물역할일지 모르나

시간의 어느 구석인가에

괴로움을 피하는 이들이 괴물 같을 때 있을 것이다

슬슬 비가 내리자

짜증을 털 듯 우산을 펴는 사람들

매콤한 입술을 다물고

돈을 물러 다니는 사람들의 화사한 이빨

같은 우산들 사이로

 

해 질 무렵

싱싱했던 일감이 마늘 냄새로 변해가는 시간

집에 가서 TV도 보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예쁜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거나

새벽까지 룸싸롱에서 끈 팬티를 튕겨가며 놀거나

더 상위의 흡혈귀에게 접대를 하거나

더 하위의 흡혈귀들에게 접대를 받거나

웃거나 웃어 주거나

쭉쭉 빨아먹거나 빨리거나

이 싱싱한, 씩씩한 사람들

조명 없이 내리쬐는 어둠 속에서 밤새 기다리면

해뜰 무렵에야 기어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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