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꿈속에 비타민들이 날아다닌다
내가 매일 먹는 비타민 B 복합제 삐콤정이
유한 박사의 꿈처럼 날아다닌다
피곤할 때마다 찾아가기 때문에
꿈은 늘 피로에 절어있기 마련이다
어려서 알약은 종이에 싸서 빻아
물과 섞어 마셨는데, 녹기도 전에 부서진
알약들은 꿈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세 알씩 한 입에 삼키는 직장생활
목구멍이 넓어진 건지 비위가 좋아진 건지
망설임도 없이 넘어가는 알약들
알약이 녹을 즈음이면 늘
기를 쓰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고
기를 쓰고 일하다 보면 집에 두고 온 꿈을 잊고
꿈속에서 과연 알약이
무슨 좋은 짓을 하는지 마는지 알 수가 없이
6개월에 걸쳐 1000개의 알약을 삼켜나간다
그러니까 마치 무슨 좋은 일을 하는 지 알 수 없이
하루 하루, 천 일이고 만 일이고 넘어가듯이
하루를 통째로 짜증 속에 삼키거나
나도 모르게 삼킨 후에 잘 삼켰는지 알기도 전에
다음 날을 받아오고, 또 다음날을 타오고
내 달력의 숫자들은 알약처럼 둥글둥글해
그날 그날 필요한 약을 삼키지만 실은 다 똑 같은 성분이듯…
마음만 아프지 않아도 되는 건
언제나 마음만 아프기 때문일까
하늘만 봐도 약이 먹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