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인가, 삶은
나는 살아오면서
평범하지 않다, 는 말을 종종 들었다.
자랑 같지 않겠지만,
자랑이다.
어느 한구석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노멀한 사람은 되기 싫었고,
노멀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의 어머니는 노멀한 분이셨고,
어머니상의 표본에 가까울 정도로 노멀하게
어머니다운 어머니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그저 적당히 남들 같은 자식
이었으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오늘,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되는 제삿날이다.
어젯밤, 아주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졸업한 지 2년이 되도록 내내
해외 여행이나 다니고, 그러는 모양이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 이 친구는,
그것만이 자기 자랑인양,
나는 노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다들 생각만 하지 그냥 살잖아,
라고 내게 말하며,
너도 마찬가지야, 결국 샐러리맨이잖아, 노멀한.
이라고 말했다.
2년 동안 여기 저기 해외여행 다닌 것을
얘기하는 것 치고는, 별 재미도 없고, 별 특별할 것도 없어서,
자기 입으로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 거라는,
말이 지겨운 것을 참으며,
결국,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얘기 밖에 할 수 없는 체험이라면
여행이라기 보다 오락이었군,
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아무 직업도 없는 너가, 여행하며 쓴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난 것이지?
라고 물었다.
비밀이야, 라고 녀석은 대답했다.
내 추측으로는,
어느 돈 좀 있는 남자의 스폰서를 받거나
적당히 애인 노릇을 해주며 공짜로 여행을 하거나
용돈 벌이를 하는 지도…
이 녀석은 제법 예쁘고, 꽤 날씬한 173cm의 여성이며,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만약 너가 노멀하지 않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떠들수록 천해 보이는 여행 경험담(아무런 색다른 발견이나 관조가 없는)이 아니라
추측이지만, 자신의 몸, 혹은 매력을 이용해서
여행을 즐기고, 그건 비밀이야, 말할 수 있는 그 사고방식과 행동이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렇다면 더욱
그건 나름 특별하군, 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제삿상 앞에 머리를 박으며
녹은 초콜릿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르고, 끈적하고, 지저분하고, 달달하게.
한없이 노멀하게.
나는 불과 2년 전만해도,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파리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찢어버리고
파리 어느 시골 구석으로 잠적해버릴 계획으로
파리에 갔었으니깐 말이다
결국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샐러리맨이 될 줄은 몰랐다
뭐랄까,나름 독하게
어머니가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다시 못 볼 걸 알면서도
떠났던 거니까.
돌아와서 본, 어머니의 마지막은, 어떤 드라마에서 보던 죽음보다도
힘겹고 거짓 같으며 지독하고 아프고 더럽고 차가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그다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나는,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나는 노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보통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를 무시하려고 애를 썼고,
그 결과로, 전혀,
어머니가 나에 대해 어떻게 보아왔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자식들은, 나 같지는 않았겠지.
라고, 정말 오랜만에
남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내가 노멀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노멀한 사람들을 더욱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온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아마도,
노멀한 사람이 노멀한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멀한 자식이, 노멀한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노멀해, 너도, 샐러리맨이잖아,
라는 말을 들었던 어젯밤, 잠을 설치면서,
내일도 밤을 새서 일을 해야 하니까 어서 자둬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어이 없다, 내 삶은 착각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진심으로 여자 하나와 남자 둘로 이뤄지는 부부관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거나,
가끔 한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거나 하는 건,
선호하는 것이 약간 다를 뿐이지 별 특별할 것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그 정도로, 넌 평범하지 않아, 이상해, 라고 말하는
노멀할 대로 노멀한 회사 사람들 속에서 야근을 하며,
뿌리칠 수 없이 나도 그들 중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주욱 노력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 건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억은 자꾸 기억을 조작하고, 그것을 즐기고,
사진 몇 장은 오해만을 불러일으킨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로
울음이 나도 모르게 나오려고 했던 것은 아마,
도,
어머니가 말해주는 ‘나’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 는 것이
무섭게 느껴져서, 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제사를 드리고 다시 회사로 와서 야근을 한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10분 전, 일요일.
일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일은 사람이 만든 놀이 중
가장 오래 즐길 수 있는 놀이 중 하나이다.
다만, 이 놀이의 가치는 뭘까?
다수의 노예화?
20년 가까이 노력해온 것이 단지, 착각인가,
싶었을 때, 이 충격적인 회의 와 동시에 찾아온
‘일하러 가야 하는데’라는 노예에 가까운 습성은,
아마도 분명,
모험 보다는 안정,
홀로 특별함 보다는 다수의 인정, 을 바라는
그 꺼림칙한 집단의 모습과 많이 흡사하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척척, 일을 해낸다.
내일이면 더 잘할 것이고,
은연 중 연봉도 높이고, 더 큰 전셋집을 얻을 생각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슬퍼진다.
그토록 피터지게 저항 운동을 하던 운동권 세대들이,
너무나도, 안쓰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대기업의 보수 관리직이 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그러므로 이건,
10대의 내가 꿈 꾸던 내 모습은 아닌 것이다.
지금의 이 모습이 비록,
인터넷에 수없이 많은 광고사이트와
그 사이트에서 광고회사 직원 따위가 되려고 꿈(?)을 꾸는
10대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이라고 해도 분명,
그런 10대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 라고 했던 나의 10대가
꿈꾸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어제와 오늘 하루가 착각인 것 같고,
지나온 삶이 착각인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그 후로 2년이나 지났고,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도,
다 착각인 것 같다.
착각에 비추어 착각을 비교해 보고, 또 다른 착각에 착각을 빗대어 보고.
밤에 밤을 대어보며 낮이네 넌, 이라고 말하는 기분.
일은 척척, 잘만 하고
밤도 척척 잘 새는 일꾼의
착각 같은...
보고싶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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