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거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 중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퇴화>가 있다.
가장 많이 경험하는 퇴화로는
시력의 퇴화
운동 능력이나 근육의 퇴화
암기력의 퇴화
깨끗한 피부의 퇴화
하얀 눈동자의 퇴화
착한 마음씨의 퇴화
공공 질서의식의 퇴화
사랑의 퇴화
배려하는 마음의 퇴화 등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옛 사람들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들보다 퇴화되는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생각, 가치관, 지식, 감각, 모든 것들이 진보되고
테크놀러지화 되는 요즘 우리들에게
윗 세대보다 퇴화되는 부분이 있다는 건 제법 충격적인 일이다.
내게 조그만 선인장 두 개가 생겼다.
얼마나 조그마하냐면 소주잔으로도 물을 따라줄 수가 없어서
분무기로 뿌려주어야만 물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얼마 전 물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집에 분무기가 없었다.
나는 옥상에 선인장 둘을 나란히 놓고 입에 물을 담고는
분무기처럼 푸우- 분사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이, 생각과 다르게
전혀 분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나 할머니가 옷을 다리거나 방망이질 할 때
입에 물을 담아 분사하던 것을 본 적이 있는 나는
그것이 결코 조금도 어려워보이지 않고
장난스러울 정도로 쉬워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적만 해도 물을 입으로 분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곧잘 했던 기억이 나는데
즉, 나는 입으로 물을 분사하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아이들이 입으로 물을 뿜으며 촌스럽게 놀기보다
게임 소프트와 인터넷을 통해 노는 시대에
아마
전 인류적으로
입으로 물을 분사하는 능력이 퇴화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여름 햇살 아래서
봉숭아 화분 사이로 뛰어다니며 입으로 물을 분사하는 모습은
앞으로 찾아보기 어려워 질 것이고
점차
입으로 물을 분사하는 행위 자체를 상상하기 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가 쟁기를 들고 밭을 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진화의 뒤꿈치에는 진흙처럼 무겁게 매달려 있다가
터덕 터덕 떨어져나가는 퇴화가 있었던 것이다.
아, 내 선인장 둘은 물을 맛있게 삼켰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물을 분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갈 자신이 없는 나는
틈틈이 물 분사 능력이 퇴화하지 않도록 연습을 하고자 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입으로 불을 뿜는 사람조차 있는데
난 너무 일찍 퇴화를 시작한 것 같다.
큰 가시를 잃어버린 개량 선인장처럼
마음 한 축에 문이 덜컹거리고 먼지가 굳어가는 느낌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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