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식당의자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공백이 뚜렷하다

 

                문인수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였던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 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 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지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나 아쉽다. 하루가, 한 주일이, 한 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 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지네

- 서정춘()

 

                 문인수

 

 어머니는 그 때 만삭에 가까웠다.

 아버지와 어떤 사내가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사코 싸움을 말리고 있었는데 그만

 누군가의 팔꿈치에 된통 떠받쳐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

 

 나는 태중에서부터 늑골 아래가 아파 몹시 울었다. 세상에 툭, 떨어지자

 냅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잠시도 그치지 않고 새파랗게, 새파랗게 질리며 울었다.

 1941년 생, 나는 아직도 피고름 짜듯 가끔, 찔끔, 운다

 

 난 지 삼 칠 일 만에 늑막염 수술을 받았다.

 난 지 두 돌 만에 어머니가 죽었다.

 마부 아버지와 형들은 모두 거구였지만 배냇앓이 때문일까, 젖배를 곯았기 때문일까, 나는 평생

 삼 단()이다. 체구가 작고, 가방 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가난이야 뭐 본래대로 바짝 조여 웅크린 채 견디면 된다.

 

 당시엔 당연히 가슴 쪽에 나있던 수술 자국이 이 시각,

 왼 쪽 등 뒤 주걱뼈 저 아래까지 와 있다. 생각컨대

 이 징그러운 흉터야말로 몸을 두고 공전하는 기억이지 싶다. 궂은 날,

 지금도 수천의 잔발로 간질간질간질간질 세밀하게 기면서

 씨부럴,

 이 썩을 놈의 슬픔이 또, 온다, 간다.

 

 

 

 

 

 

 

 

 

 

주저흔(躊躇痕)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여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 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 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 기 전 바람과 빛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 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 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기 보단 어쩐지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에

 

        김명인

 

 당뇨로 시력을 잃었다는 여자가

 어머니와 병실을 나눠 쓰고 있었다

 시렁인 듯 침상 위에

 뽕잎 대신 담요를 뒤집어쓴 누에가 간간이 뒤척거렸다

 이쪽의 말소리 때문일까 자도 무어라 환한 추억을

 숨 가쁘게 뱉어낸다

 비단길 거쳐 온 버거운 실낱이

 여자의 입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와 흩어져갔다

 고치를 풀어내는 물레

 누가 잣는 것일까

 그래, 그럼, 어머니가 맞장구를 칠 때마다 말들이

 팽팽해졌다 느슨해졌다 한다

 어머니의 연줄을 감는 얼레는 또 누가 들고 섰는지

 까마득해 안 보이고 안 보이는 연을 보려고 두 누에가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허공을 더듬거린다

 거지반 태엽 풀린 늦가을 단풍잎

 그 연줄에 걸렸다 천천히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다

 

 

 

 

 

 

 

 

 

눈사람

 

         김행숙

 

 왜 나는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까?

 햇빛이 비치면

 왜 나는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났을까?

 

 눈사람은 좋겠다.

 

 시간이 펑펑 남아도네. 눈보라처럼 어지럽게 아이들은 자라고 눈사람은 점점점 작아진다. 눈사람이 작아졌다! 엄마가 죽었다. 내가 예뻐지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죽었다. 눈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나는 점점 이상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좀 말해줄래?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나는 아직 남아 있는데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

 

 내 눈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치 찬장에서 설탕이나 기름병이 사라졌다는 듯이

 사소하게

 나는 시장에 간다.

 

 

 

 

 

 

 

 

 

           김행숙

 

 마차에서 말들이 분리되는 순간

 마차는 스톱! 하지 않았다

 마차는

 서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쓴다, 나로부터 멀어지는 말발굽들처럼

 

 극적으로 쓰러지는 대단원의 인물들처럼

 다시 일어나 화려하게 웃으며 무대인사를 하는 여배우처럼

 다른 사람처럼

 

 허공에 휘어진 채찍처럼

 나는 만지고

 사랑하였다

 

 나는 쓴다, 쓰고 나서 지우지 않고 쓴다

 

 

 

 

 

 

 

옆모습

 

                 김행숙

 

 옆모습은 너의 절반일까

 똑같은 눈

 똑같은 코

 냉장고와 프라이팬에 나뉜 고깃덩어리처럼

 꽁꽁 어는 것

 불 위에서 녹고 타는 것

 

 옆모습은 어디서부터 어디로

 어디까지 확장될까

 상상은 잘 펼쳐지지 않는다

 똑같은 모양으로 구부러진 팔을 상상하는 순간

 무서워!

 태어나지 않은 동생들처럼

 팔은 꿈속에서도 먼지 속에서도 자란다

 

 선반은 언제나 너무 높고

 네가 발꿈치를 들 때

 손이 손을 떠나 네가 문득 비었을 때

 

 똑 같은 손이란 무엇일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일까

 네가 네게 칼자국을 몇 개 긋고

 싱싱한 화초처럼 불꽃을 심을 때

 오그라드는 살과

 명확해지는 뼈

 너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하여

 

 천천히 회전한다

 네게 박수를 보낼 수가 없어!

 오른손이 왼손을 모르고

 오른손이 오른손도 모르고

 너는 자꾸 벗어난다

 

 

 

 

 

 

 

 

감자꽃을 따다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동업자

 장철문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참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수정동 물소리

 

               손택수

 

 수정동 산비탈 백팔 계단에 서면 통도사 금강계단이 겹친다

 

 산복도로 내가 오를 계단 끝엔 가난한 불빛 한 점이 있고,

 통도사 금강계단 끝엔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다

 

 살아가는 게 묘기로구나, 벼랑 위에 만든 계단이여, 끝없이 관절을 꺾는 힘으로

 찾아가는 집이여, 가슴에 든 멍이 까맣게 죽은 빛을 하고 밤이 찾아오면

 

 불이 물소리를 켠다

 금강계단 가물가물 번져가는 연등 속에서

 부은 발을 어루만지는 물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린 무릎 짚고 한 단 두 단 꺾어졌다 펴지는 물소리, 다친 모서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출렁이는 물소리

 

 흘러내려간다, 부산 앞바다

 그 너머 수평선

 가슴에 든 멍이 쪽빛이 될 때까지는

 

 

 

 

 

 

 

손은 손을 찾는다

 

                    이문재

 

 손이 하는 일은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에게 지고

 내가 나인 것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네가 아닌 것이

 견딜 수 없이 시끄러울 때

 

 그리하여 탈진해서

 온종일 누워 있을 때 보라

 여기가 삶의 끝인 것 같을 때

 내가 나를 떠난 것 같을 때

 손을 보라

 왼손은 오른손을 찾고

 두 손은 다른 손을 찾고 있었다

 손은 늘 따로 혼자 있었다

 빈손이 가장 무거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

 생수 한 모금 마시며 알았다

 모든 진정한 고마움에는

 독약 같은 미량의 미안함이 묻어 있다

 고맙다는 말은 따로 혼자 있지 못 한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해야한다

 

 엊저녁 너는 고마움이었고

 오늘 아침 나는 미안함이다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삼월에 내리는 눈

 

                        이문재

 

 봄눈은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지금 봄의 문전에 흩날리는 눈발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질 줄 알았던 것이다

 전속력으로 내리 꽂히고 싶었던 것이다

 

 봄눈은 이런 식으로

 꽃눈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땅의 지붕이란 지붕을 모두 난타하며

 오래된 숲의 정수리들을 힘껏 두드리며

 봄을 기다려온 모든 추위와 허기와

 기다림과 두려움과 설렘 속으로

 흔쾌하게 진입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꽃눈을 흥건히 적시고 싶었던 것이다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산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아니 비의 꽃은 억울해 너무 억울해서

 쌩한 꽃샘바람에 편승하는 것이다

 비의 꽃은 지금 꽃을 제 안으로 삼키고

 우박처럼 단단해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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