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
자라 장군이 될 줄 알았던 녹두는
자라 빈대떡이 되었다
비 오는 여름, 병마와 싸우다 산성에 묻힌 할머니 떠올릴 때면
늠름한 녹두장군이 손자국처럼 마음에 짝, 달라붙는다
뜨거워진 마음을 뒤집듯 한 장, 또 한 장
나는 왜 그때 더 많이 먹어두지 않았나
나는 왜 녹두만큼도 다정하지 않았을까
푸르지도 짓무르지도 않았을까
5천 원짜리 녹두빈대떡을 삼키며
할머니가 지져주시던 빈대떡을 생각한다
장군감이었던 손주들이 하나 둘
시체 군단처럼 회식자리로 진군하는 이 밤
할머니는 아직도 무덤 속 쭈구리고 앉아
치성 드리듯 녹두 문지르고 있을까
왜적에 맞선 타고난 장군이었다는데
왜 녹두 장군은 맷돌질 몇 번에
울먹이는 전이 되고, 파가 되고, 눅눅한 향기가 되고
쏟아진 술잔 옆에서 말 없이 식어가고
추억만이 질질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