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07(초판 12쇄)
야스코는 연립주택의 벽에 난 금처럼 그의 존재를 알면서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고, 또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복판에 앉지 않는 것은 강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의 문제에서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는 것과, 남에게 들은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또는 그 어려움은 어느 정도일까.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상금을 걸고 낸 문제 중의 하나야.”
수학을 정말로 이해하는 학생은 극소수이고, 고등학교 수학과 같은 낮은 수준의 해법을 전 학생에게 주입시킨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세상에 수학이라는 난해한 학문이 있다는 것만 알면 그걸로 족하지 않는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왜 내가 자네를 수상쩍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물을 필요도 없지. 어느 세상이건 과학자란 늘 사람들에게 수상쩍은 존재니까.”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이 생겨난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들의 소박한 의문에 대답하지 않는 교사가 너무 많다. 아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고 학생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모리오카가 던진 그런 질문 따위는 그냥 번잡하고 귀찮을 따름이다.
이런 데서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단순히 점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문제를 내고 있다. 그것을 채점해서 점수에 따라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런 것은 수학이 아니다. 물론 교육도 아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어. 내가 너무 젊어 보인다고. 자신과는 달리 머리숱도 많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빠진 머리를 마음에 두는 것 같은 몸짓을 보였지. 그게 나를 놀라게 한 거야. 왜냐하면 이시가미라는 인물은 결코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인간의 가치는 그런 걸로는 측정할 수 없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옛날부터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진실을 모른다는 것이 때로는 큰 죄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바로 그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
몸이 구속당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수학문제를 풀 수 있다. 손발이 묶이면 머릿속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안 보여도, 아무 소리가 안 들려도 좋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힘도 머릿속까지는 건드릴 수 없다. 그 공간은 그에게 무한의 낙원이었다. 수학이라는 광맥이 잠들어 있고 그것을 모두 파헤치는 데 인간의 일생은 너무도 짧다.
누구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물론, 논문을 발표하여 평가받고 싶은 욕망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누가 최초에 그 산을 오르느냐가 중요한데, 그것은 본인만이 알면 그만이다.
세계라는 좌표에 야스코와 미사토라는 두 개의 점이 존재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 모녀와 어떤 관계를 가져보자는 욕망은 아예 없었다. 자신이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수학도 똑같다는 것을. 이 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명성 따위는 그 숭고함에 상처를 입히는 거소가 같다.
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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