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2,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 2008(초판 6쇄)
이제 읽지 않은 장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는 언제나 마지막 문장을 두려워했다. 책을 중간쯤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문장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늘 고통스러웠다.
‘이제 네 아버지는 아프지 않아.’ 관 뚜껑을 닫기 전에 엄마가 한 말이에요.
“난 가끔 오빠의 영혼이 다른 무엇보다도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진실한 이별은 만남이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존경과 인정을 거두어가면, 왜 우린 그들에게 ‘그런 건 필요 없소. 나 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니까’라고 말하지 못하나?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소름끼치는 속박의 한 형태가 아닐까?
‘걱정할 것 없다.’
손을 관자놀이에 대고 오빠가 날 안심시켰어요.
‘육체도 정신이라서 그런 거니까.’
“…서로 사랑해서 삶을 함께하려고 결혼하지. 돈이 필요해서 훔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해. 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 우린 천박함으로 가득한 꾸며진 존재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은과 같은 영혼, 게다가 끝없이 흔들리는 요지경처럼 색과 형태가 변하는 감정을 지닌 존재들이 아닌가.”
“… 조르지, 영혼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해. 우리 인간의 가장 천재적인 발명품이지. 현실세계에서처럼 영혼에도 뭔가 발견할 게 있으리라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암시성 때문에 천재적이지. 하지만 조르지, 진실은 그렇지 않아. 우린 대화할 대상을 갖기 위해 영혼을 만들어낸 거야. 우리가 만나면 이야기할 만한 뭔가를 갖기 위해…”
“ ‘영혼에 관해서라면, 우리 수중에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늘 하던 말이지요.”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우리는 낙인 찍힌 글을 찾고 해석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면서도, 우리가 그걸 정말 이해했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나타나기 전가지는 말이에요.
‘그곳에는 너밖에 없어. 나 말고는.’
타인은 너의 법정이다.
누군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정말 그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까?
존엄하게 죽는 것이란 그게 종말임을 인정하는 거야. 불멸에 관한 온갖 유치함을 극복하는 것이지.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 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나는 코임브라의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 기차에서 절대로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구속력이 없으며, 잊혀질 운명이다.
웃음이 멎고 세상의 무게가 다시 느껴지자
저는 누군가가 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눈이 멀어야 저는 안전하고 자유로우니까요.
많은 여자들 가운데 당신인 이유는? 어느 순간엔가 모든 사람이 하는 질문이다. 속으로만 내뱉어도 이 질문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임의성이나 대체 가능성과 똑같지는 않지만 우연이라는 생각, 우연이라고 발음하는 생각이 그토록 소름끼치는 이유는? 왜 우리는 이러한 우연을 인정하고 웃음으로 넘기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우연이 사랑의 의미를 축소한다고, 우연을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왜 사랑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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