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늙은 것들에 대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중반
사회의 이슈 중 하나는 ‘예절 모르는 젊은 것들’이었다.
그때 젊은 세대를 일컫는 ‘X세대’라는 용어가 처음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문화가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힘을 키우던 시기였다.
어디서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요즘 것들’은 되 먹지 않았다는 비난이 심심찮게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 애들이 듣기 싫은 소리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최소한의 욕구가 드러난 것이며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라고 젊은이들을 옹호했으며,
수험생들이 더 피곤할 수 있고, 몸이 아픈 데도 불구하고 눈치가 보여 자리를 비켜주는
억울한 경우도 있었다는 사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10대 들에게 공유 되었다.
어른들이 많은 곳에서 서슴없이 귀를 틀어 막는 것,
어른들 및 기성 세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 하는 것,
그것은 오늘날의 촛불시위만큼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충분히 강한 저항행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CD한 장 다 돌아갔을 시간인가 싶은 지금,
어느새 그 후로 10년 이상이 훌쩍 지나버렸다.
15세 이후로 지금 31세까지 나름 촉각을 세우고 이 ‘어린 것들의 예절 없음’을
관찰해본 결과 내 나름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린 것들의 예절 없음’보다 심각한 것이 ‘늙은 것들의 예절 없음’이라는 것이다.
자기보다 어려 보이면 무조건 반말을 하는 늙은이,
패스트푸드점에서 남이 앉아 쉬고 있는 테이블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떡 하니 앉아버리는 늙은이,
술에 취해 전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늙은이,
젊은이 못지 않게 다리를 쩍 벌리는 늙은이,
심지어 이미 꽉 찬 7인석 지하철 좌석 사이로 비집고 앉아버리는 늙은이,
버스 정류장에 줄 서서 버젓이 담배 피우는 늙은이,
(여기서의 늙은이란 40세 이상의 성인 남녀를 대략적으로 말함)
우리 사회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은 예의를 덜 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늙은이들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15년이나 지나 다시 생각하는 바이지만,
당시 늙은이들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다녔다면 누구도 예의 없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당시까지(그리고 어느 정도는 지금도) ‘예의’는 어린 것들이나 지키는 거라는
천박한 차별주의가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나는 공자도 맹자도 유교의 가르침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이 나이가 들수록 예의 없어지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겐 함부로 하고,
뻔뻔해지고,
자기 중심적이 되고,
그러면서 남 탓 하기는 즐기는 그런 늙은이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어떻다는 말은 옛사람들의 가르침이 아니었던가?
또한, 교양 있는 늙은 지식인들, 예를 들어 보통의 교수들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몰상식하고 버릇없이 학생들을 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무식한 늙은이들일수록 낡고 구멍난 예절을 걸치고 있고
과거 자신이 어른들에게 주입된 사상을 곧이 곧대로 젊은이들에게 대입한다거나
까페의 아르바이트 여학생이나 주유원들에게 반말을 찍찍 해대는 게 보편적이다.
학교에 오늘날에 맞는 예절 과목이 사라지고 있고
입시 위주의 학업, 그리고 취업 위주의 학업에서 공부가 끝나는 만큼
앞으로 생겨날 늙은이들의 예절 또한 그다지 기대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해선 안 된다는 교양 정도는 배우겠지만…)
그러므로, 장기적이며 평생적인
늙어가는 이들에게 맞는 적합한 예절 교육 또한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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