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빈 병 팔아봤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종종 내 용돈은 빈 병을 팔아 얻을 수 있었어.
동네 구멍가게에 빈 병을 가져다 주면 가게에서 돈으로 바꿔줬거든.
그게 얼마였더라. 처음엔 소주병이 병당 10원이었고, 맥주병이 30원이었어.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니까 소주가 병당 30원이고, 맥주병이 50원이 되었지.
소주보다 맥주병이 더 크니까, 더 무겁기도 하니까, 돈을 더 많이 주는 것 같았어.
그건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지.
맥주병이 50원 일 때, 커다란 델몬트 유리병을 가져다 주면 100원이나 주었어.
그런 병이 나오는 날은 그야말로 한 건 한 셈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헷갈리게 하는 일이 생겼어.
샴페인인가, 뭔가 하는 크기도 하고 모양도 특이한데 알록달록 예쁜 병이 생긴 거야.
우리 집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병이었는데
세 들어 살던 신혼 집에서 내놓은 건가 봐.
아무튼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병이니까 절로 기분이 좋아서 구멍가게에 갔지.
그런데 왠걸, 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거야.
그런 못 보던 병들을 가져다 주면 한 10개 가져가야 30원 정도 쳐주고는 했지.
위스키인가 하는 양주병들도 돈을 거의 못 받았어.
소주병과 비슷하게 생긴 사이다 병은 소주병이 30원일 때 겨우 10원씩 쳐주었고.
이때부터는 초등학생인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어.
당시엔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이해가 쉽게 대답해 줄만한 어른이 없었던 것 같고,
또 그런 걸 쓸데 없이 왜 묻냐고 공부나 하라는 소리도 듣는 그런 때였어.
이렇게 얘기하니 무척 오래 전 일인 것 같지만
아직 20년도 되기 전이구만, 뭐.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면목동이 다른 동네보다
좀 더 후지긴 했지.
얼마 전 강남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데 와인병처럼 생긴 유리병을 물병으로 쓰더라고.
그때 “참 예쁘네, 저런 건 얼마나 받을까?” 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버렸어.
그러면서 옛날 생각이 났지.
그리고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걸 지금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왜 더 크고, 더 예쁜 병이 더 적은 돈을 받는 일이 생기는 걸까?
그건 그 병의 값, 즉 돈이 병에서부터 나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 병을 이용하는 시스템에서 나오는 거였기 때문이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추측해보자면 이런 거야.
맥주나 소주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려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병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병을 회수할 경우 그만큼 병의 생산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제법 돈을 주면서 빈 병을 회수했던 거지.
하지만 와인이나 샴페인 같은 경우, 그만큼 대량으로 생산하지는 않았던 거야.
소주나 맥주처럼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상대적으로 약했던 거고.
그러니까 그들은 빈 병을 재활용하는 것과 자신의 이익이 별로 큰 연관이 없었던 거야.
사이다 같은 음료는 맥주나 소주와 마찬가지로 빈 병의 활용이 이익이 될 만큼
많은 생산을 하긴 했지만, 음료 자체의 가격이 소주나 맥주만큼 비싸지 않으니까
병의 가격도 더 적게 쳐주었던 거고.
그런 식으로, 사회는 시스템이라든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거였고,
그저 병이 모이면 장독 뒤나 부엌 구석에서 비닐 봉지 찾아서
빈 병 채워 넣고 어깨가 축 처지도록 끙차 끙차 구멍가게로 향하던
어린 나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였던 거지.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또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
요즘은 왜 병을 팔러 가는 사람이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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