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에 가면

 

 

블랙홀에 가면 내가 버린 말들 다 모여있다

만들어지다 버려진 눈 코 없는 말들도 꿈틀거린다

잔뜩 쌓여 있는 것들

그게 뭔지 기억 못하니까 블랙홀이다

사람의 목구멍은 다 거기와 접붙여져 있다

블랙홀에 가면 버려진 말들이

못다 말한 역사들까지 기록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지워버린 물음표나

세종대왕이 변소에서 내뱉었던 새벽 신음 소리도

다 거기 모여 있다

삼천 궁녀의 삼 천 개 이름도 거기 다 박살 나 있다

히데요시 말투엔 싸가지 들이 빠져 삐뚤빼뚤 날카롭고

총구멍 숭숭 뚫린 평화라는 말도

블랙홀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볼거리다

그러나 블랙홀엔 빛이 없어

당신 눈에 불을 켜도

어떤 글자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는 당신이 있다면

아마도 그대가 이곳의 주인인 듯 하다

말하여진 욕심들이 반짝이는 우주를

몽땅 쪽 빨아들여 가두고

마침내 퉤퉤퉤 뱉어내는 순간

그 가장 작게 튀는 말들 중 어느 받침 아래는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린

내가 한 조각 붙어있을 것이다

내가 없어지고 난 뒤에도

그건 그렇게 썩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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