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La 65
가루 L 칼럼
채색, 길게 하려면 이렇게 해라
광우병과 AI파동으로 고기를 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접하면서 채식주의자로서 한편으로는 무척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얼마 전 ‘필름2.0’의 ‘편집장의 말’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의 이러한 ‘푸념’이 채식주의자들의 ‘선민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자신만의 성역을 쌓고 살아가는 데 대한 나름의 긍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이러한 긍지가 있는데, 이젠 너도 나도 채식을 하니 낭패감을 느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는 완전히 잘못된 추측이다. (나는 사실 이러한 생각은 ‘채식주의자들은 유별나고 까다로운 사람’ 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채식주의자들은 세상에 채식주의자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왜냐하면 채식주의자가 많아질수록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생기고, 그러면 지금처럼 외식 한번 할라치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택지 속에서 골라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주문할 때 야채만 넣어달라고 했는데 아무 의심 없이 맛살을 김밥 속에 넣고 있는 아주머니를 급히 제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럼 채식주의자들은 지금의 현상(너도 나도 채식을 하는)을 왜 걱정하는 것일까? 그것은, 채식이 단순히 식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생활,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서 왠만큼 ‘의식화’ 되지 않고는 이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기가 광우병과 AI 위험이 있어서 끊었다면, 그런 위험이 제거된 고기가 눈앞에 있으면 먹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식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면 “역시 난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어”라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채식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채식을 하기 위해 왜 ‘의식화’가 되어야 하는지 좀더 이야기해 보자. 채식은 육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끊는다’는 것인데, 사실 건강만을 위해서라면 고기를 ‘완전히’ 끊을 필요까진 없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물성 사료가 아닌 풀과 곡식을 먹고 자란 양질의 고기를 삶아서 기름을 빼고 야채와 함게 먹는다면 건강에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육식을 최소화 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여러가지 불편을 감수하면서 육식을 완전히 끊는 데는 다른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 이유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생활을 바꾸는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의식화’이다. 유명 채식인들 중에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토비 맥과이어처럼 햄버거를 먹다가 우연히 햄버거에 들어간 동물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채식을 하게 된 ‘우연형’들 이 있지만, 나 같은 범속인이 지속적인 채식을 하기엔 이런 우연한 계기만으로는 아무래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 누군들 고기를 먹으면서 음식으로 식탁위에 올려지기 위해 목을 따이고 피를 철철 흘리는 소나 돼지를 상상해본 경험이 없겠는가.
지속적인 채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의식화’에도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나의 몸에 끼치는 해악이 첫번째 통로가 되었다. 육식이 몸에 끼치는 영향을 공부하보니 자연스럽게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알게 되고, 육식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영향, 계급과 자본주의가 육식에 끼친 영향과 채식사회이던 제3세계의 육식화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육식이 나의 몸과 정신건강, 사회질서,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들을 한꺼번에 없애나갈 수 있는 길은 ‘채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화는 지속적인 채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면 광우병 위험이 없는 질좋은 쇠고기가 눈앞에 있을 때도 인간이 먹을 100g의 소고기를 얻기 위해 낭비된 200리터의 물과 1.5평의 수풀과 수많은 곡물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고기를 먹음으로써, 내가 먹을 고기를 만들기 위해 나 대신 소와 돼지의 동맥을 끊고 동물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쏟아내며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던 어느 도살자의 정신건강이 파괴되는 것에 내가 동조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면, 내 눈앞의 고기는 더 이상 음식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채식을 하면서, 육식과 채식은 단순히 식단의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자연질서, 그리고 정신세계에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초식동물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이빨과 장 구조, 침의 성분, 위의 염신분비 정도 등을 보고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채식을 하고도 영양불균형 업이 잘 살 수 있고, 채식이 몸에 맞다. 우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동물을 보고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본래 육식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이면서 발생되었다. 인간사회의 육식 보편화는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밖에 없다. 많은 채식인들이 채식을 하고 나서 건강도 좋아졌지만 집중력이 높아지고 정신건강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최근에 선혈이 낭자한 호러 무비를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전에는 별 불편함 없이 보았던 살육 영화를 지금은 눈 가리고도 보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어떤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채식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공부를 하라. 책을 구해서 읽은 뒤엔,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라. 채식에 성공하면 장이 편안해지며, 고기를 먹을 때 이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길러지고 어떤 과정으로 도축되었는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이별할 수 있다. 성인병(생활습관병)을 걱저하며 내가 든 생명보험의 보험금이 적지는 않은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보내지 않고도 지구환경의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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