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690호
오마이이슈
쉿! 고려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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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마치고 몇 년에 한번쯤 결혼식이다 뭐다 해서 다시 가보면 허구한 날 공사 중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캠퍼스에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지어 일반분양하고 싶은 게 학교당국의 생각 같았다. 대리석 벽면에 기증자 이름만 나열됐다뿐 대학인지 회사인지 알 수 없게 휘황(혹은 허황)하게 세워진 건물들도 그러하지만, 족구를 하던 자리는 주차장으로, 컵라면 먹는 아이들에게 김치 보시기를 건네던 주인 부부의 매점(깡통이라 불리던)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바뀐 것은 교정만이 아니다. 식판을 들고 두번 세번 오가도 밥을 퍼담아주던 학교 고용 아주머니들은 사라지고 프렌차이즈 외식업체의 모자를 눌러쓴 표정없는 이들이 정량의 밥만 담아주었다. 콩다방, 별다방이 자판기를 대체했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다니기 힘든 곳이 돼버렸다. 하긴 돈 없으면 들어가기조차 힘든 곳이니.
고려대가 입시사고 혹은 입시사기 같은 일을 저질러놓고도 배째라로 일관하고 있다. 명백한 특목고 우대 아니냐는 일선학교 교사들의 항의에는 ‘이번에 너네 학교에서 1차 합격한 애들이나 다음해에 들어올 애들이 불이익받지 않게 하려면 입 닥치라’는 요지로 협박한다.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들도 내신과는 거꾸로 당락이 갈린 걸 보니, 입시부정이 아니라면 편법으로 고교등급제를 적용하려다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 것 같다. 해명은커녕 변명도 못하면서 큰소리츠는게 참으로 ‘고려대스럽’고,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는 교육당국은 참으로 ‘교육부스럽’다.
시인
몸으로 깨달은 거죠. 우리는 열을 그냥 온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겪어보면 열이란 시간이며 공간이라는 걸 알게 돼요. 만약 40도로 4시간을 알았다면 40도짜리 열의 시간이 있고 그것은 몸 안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거죠.
강력계 형사반장이었던 아버지가 IMF 때 명퇴를 했는데, 유일하게 타자기 하나를 집에 들고 오셨어요. 아버지는 죄의 기록을 평생 타자로 치셨죠. 아버지가 타자기를 잘 두드리면 그 사람은 감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거고, 나는 타자기를 잘 치면 내가 꿈꾸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의 정체성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형성됐어요. 평생 누군가를 의심하는 직업 때문에 아버지는 식구들도 의심했고 사랑의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듯 때리기도 했어요. 자연스레 저는 아버지에게 거짓말 잘하는 데에서 삶의 정체성을 찾았고요.
전, 매일 삶의 조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벽에 박힌 못을 이쪽에서 보면 벽에 박혀 있지만 벽 뒤쪽의 시선으로 보면 시간 속에 떠 있는 것이죠. 즉, 기이한 형태예요. 기형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연민, 아름다움, 서글픔을 느끼게 할까. 그것을 찾는 게 저의 미학이에요. 여행과 공연도 ‘시차’의 연장이죠. 무대에서 배우들은 페르소나 속에서 시차를 겪는 것이고요. 지휘자가 연주를 마쳤을 때, 거대한 울음을 상기시키는 공연장 안의 침묵 또한 시차예요.
첫 시집 속의 서정이나 서사구조를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두 번째 시집은 의도적으로 독자들을 갈라버렸어요. 사랑받는다는 사실의 위험에 대해 짐승 같은 본능이 있어요.
서정이 지닌 폭력성이 있어요.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서정이 옹호를 받아요. 난해한 것을 꺼리고 온기를 찾죠. 그것이 반성 없이 기조로 형성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감(感)의 세계죠. 감을 보고, 감 잡고, 감이 좋으면 한번 더 읽고, 이해했다고 여겨요. 과거 베껴 쓰는 행위는 시와 동일화하는 행위죠. 지금 시는 마니아 문화예요.
“어린 시절 나는 여자를 사로잡고,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으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10초 안에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남자를 연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젠 오류를 범하는 캐릭터가 좋다. 숨을 쉴 수 있고 인간의 시간이 존재하는 영화가 좋다.”
- 브래드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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