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삼인, 2008(초판8쇄)
진보 세력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사실만으로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체계와, 그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프레임’에 근거하여 정치와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왜 그럴까요?
진보주의자들이 단순히 “보수주의자들에게 진실을 들이댔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보수주의자들이 그 사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프레임을 지니지 않는 한, 이런 방법은 효과가 전혀 또는 거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의 프레임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냥 보수주의자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시작할 때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함으로써 진실을 던져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진실은 그냥 튀겨 나가 버립니다. 이 나라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담 후세인이 9∙11의 배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렇게 믿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같은 것이고, 이라크 전쟁에서 싸워 조국을 테러리즘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9∙11위원회의 보고서가 이미 발표된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믿습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프레임을 지니고 있고 그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원들은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 데 충격을 받거나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들은 저에게,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부시에게 투표할 수 있는 거지요?”하고 묻습니다.
2000년 대선에서 고어는 부시의 감세안이 상위 1퍼센트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되풀이해 강조했습니다. 그는 나머지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따라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자로서 그들은 부자들 – ‘선한’ 사람들 – 이 잘 훈육되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많은 돈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위 99퍼센트의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이익에 반하여, 자신의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 것입니다.
룬츠에 따르면, 여성들은 ‘사랑(love)’, ‘진심으로(from the haeart)’, ‘우리 아이들을 위해(for the children)’ 같은 어구를 선호하므로 여성 청중에게 말할 때는 이러한 어구를 가능한 한 자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시의 연설문을 읽어 보면 ‘사랑’,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인지’라는 개념은 1950년대 타히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인류학자 밥 레비(Bob Levy)는 심리치료사로서 뒤늦게 인류학 연구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에는 그렇게 자살률이 높은지 의문을 풀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타히티어에 ‘슬픔’이라는 개념을 지닌 단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지만, 그것을 이름 붙일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의식도, 슬픔을 위로하는 관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실히 필요한 개념을 결여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높은 자살률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10년간 공화당은 유권자들의 마음속에 ‘엄격한 아버지’ 상을 작동하는 기술에 정통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슈춰제너거가 인기 있는 것은 자동차 경주 팬인 육체노동자 남성들 사이에서 부시가 인기 있는 것과 같은 연유이다. 그것은 이들이 ‘엄격한 아버지’의 가치 및 전형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우들은 ‘게이 결혼(gay marriag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우익에게 ‘게이’라는 개념은 거칠고 정상이 아니며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익들이 ‘동성 결혼(same-sex marriage)’ 대신에 ‘게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 까닭은 이것이다.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우리 대외 정책의 핵심적 은유는 국가를 사람처럼 보는 것이다. 이 은유는 이라크 국가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인간으로 개념화하는 말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용된다. 우리가 듣는 바에 따르면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된다. 일반 미국 시민들은 “사담은 독재자야. 그를 막아야 해” 같은 말을 하면서 이 은유를 사용한다. 이 은유는 물론 첫 이틀 동안 투하되는 폭탄 3000발이 그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그것들은 이 은유 뒤에 은폐되어 있는 수천 명을 죽일 테고, 그 사람들은 (이 은유에 따르면) 우리가 전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인 대부분은 분명히 진실에 노출되어 있다. 사담과 알카에다 사이에 믿을 만한 연결 고리가 없다는 사실, 대량 살상 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수많은 선량한 이라크 민간인이 우리가 떨어뜨린 폭탄으로 죽고 다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성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걸까?
여론 조작(spin)은 프레임을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뭔가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거나 폭로되었을 때, 거기에 결백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시도이다. 즉 부끄러운 사건을 정상적이거나 좋은 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보수주의 기독교에서 믿는 신은 징벌을 내리는 신이다. 이는 곧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고, 죄를 짓지 않으면 상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 죄를 짓게 마련인데 도대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보수주의적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다. 예수가 한 일은 죄인들에게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준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너무 큰 고통을 겪은 나머지 모든 사람을 영원히 구원하기에 충분한 도덕적 신용을 쌓았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아버지’의 조건하에 그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 즉 구원의 – 기회를 주었다. 그 조건이란, 예수를 구원자로 – 다시 말해 도덕적 권위자로 – 영접하고 목사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규율이 요구된다. 우리는 규율을 터득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지옥에 갈 것이다.
리버럴한 기독교는 이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리버럴한 기독교에서 믿는 신은 본질적으로 인정 많은 신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어한다. 리버럴한 기독교의 핵심적인 개념은 ‘은총(grace0’인데, 이는 일종의 은유적인 ‘보살핌’이라고 이해된다. 리버럴한 기독교에서 은총이란 우리가 노력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조건 없이 내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하며, 신의 은총을 받고자 신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우리는 은총으로 충만할 수 있고, 은총으로 치유될 수 있고, 신의 은총을 통해 도덕적 인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진보주의의 가치야말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전통적이면서도 미국적인 가치이다.
우리는 미국 역사에서 신분 제도에 대한 평등의 승리를, 노예 해방을, 여성 참정권 쟁취를, 노동조합 운동을, 군대 내의 인종차별 철폐를, 시민권 운동을, 여성 운동을, 환경 운동을, 동성애자 권리 운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누가 ‘게이 결혼’이 어떻고 운운하기 시작하면 저는 그들에게, 당신은 연방 정부가 당신이 누구와 결혼할지 정해 주었으면 좋겠는가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정부가 특정 집단에게 누구와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기 시작하면, 다른 집단한테도 그렇게 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결국에는 우리에게 누구와 결혼하라고 지정해 주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단 내 프레임이 논의에 받아들여지면,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그냥 상식이 된다’ 왜? 이미 받아들여진 진부한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는 것이 바로 상식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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