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 마쓰다 유키마사, 바다출판사, 2008(초판2쇄)
와시다 기요카즈는 2006년 출간한 《감각의 어두운 풍경》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다. 변이나 콧물, 침이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도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몸 밖으로 배출되면 극도로 더럽다고 느끼고 혐오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성당에서는 원래 창으로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밖은 하늘의 신만 보면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 때까지 풍경화가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카니발’의 어원은 ‘carne vale(고기여, 안녕)’이다. 단식 수행 전에 고기를 실컷 먹어 두는, 즉 마지막으로 고기를 실컷 먹어 두는 것이 기원이다.
오늘날에는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육을 먹는 도착 행위까지 나타나 식인은 더욱 복잡해졌다.
인육을 먹는 풍습에서도 또 하나의 발견이 있었다. 안구가 둥글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계절이나 나날의 은총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태양이나 달과 같은 원, 또는 구체를 내부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이쯤에서 눈의 신비주의, 눈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안구는 인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관이 되었다.
구사모리 신이치는 나선을 보고 만취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육체와 만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촬영할 때 ‘쇼트’라고 하는 것처럼 카메라에는 총의 유비가 반영되어 있다. 필름 케이스를 ‘매거진’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탄환의 탄창을 말한다. 탄환이 한 발 한 발 탄창에 장전되는 것도 톱니바퀴가 퍼컬레이션을 하나씩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텍스트’란 ‘텍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원래 직물을 가리킨다. 직물을 짜듯이 문자를 뽑아내는 타자기는 이를 테면 직기(織機)이고 문자는 뽑아진 한 줄의 실이다.
타자기는 숄즈와 글리든, 인쇄업자 새뮤얼 소울이 공동으로 개발하고(1866년), 그 특허권을 총기 회사인 레밍턴 사가 사서 대량생산함으로써 확산되었다. 총과 타자기의 구조가 같다고 판단한듯한 아이러니한 발상이다. 즉 자판(방아쇠)을 두드리면 순식간에 글자(탄환)가 연속해서 한 줄로 튀어나온다는 유추이다.
프랭크 스텔라가 말한 것처럼 “미국 회화는 드럼통에서 시작되었다”. 그 드럼통의 왕자야말로 폴록이다.
노예 해방을 주창한 북부도 기본적으로는 노예인 흑인을 좋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남부 이상으로 인종차별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노예주가 늘었다거나 남부의 노예에 대한 지배가 지금 이상으로 심해지자 노예가 북부로 도망쳐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흑인이 북부에 오면 백인과의 사이에서 혼혈이 생겨난다. 이것이 북부의 백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노예를 해방하고 흑인들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즉 흑인들을 쫓아내고 백인만의 제국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본심이었을 것이다.
북부의 본심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링컨이었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
공감각이란 오감이 미분화된 유아기에 어떤 계기로 감각이 교차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숫자나 음에서 색을 느끼거나 하는 것이다. 음에서 색을 느끼는 사람은 색청(色聽)이라고도 한다.
문신은 최초로 표현 수단의 하나가 되었고, 신체는 읽혀야 할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즉, ‘읽는다’는 행위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자의 성립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문신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문자 역시 고통의 기억을 아직도 갖고 있다.”
책을 그리스어로 비블리온bibl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책의 소재인 파피루스(이집트의 나일 강 연안에 무성한 식물)의 내피를 비블러스Byblus라 한 데서 온 것이다. 여기서 바이블bible이 되고 ‘Book’이 생겨났다. ‘The Book’이라고 하면 성서를 말한다.
3박자 세계인 서양에 4박자 음악이 록이 나왔을 무렵, 불량한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라는 세평이 있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록은 3박자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 일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였다면 악마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도 단순함과 복잡함의 융합이 있다. 궁극의 단순함이란 궁극의 빽빽함이다.
인류는 태곳적부터 다양한 것을 가두고 지식을 응집시키는 전략으로 문화를 형성해 왔다. 예컨대 달력에 시간을, 동굴벽화나 종이에 기억을, 토기에 목숨을, 부적에 원령(怨靈)을, 지도에 방위를, 악보나 책에 청각을, 사진이나 영화∙텔레비전에 시각을, 종교나 철학에 정신을 가두어 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토기는 재분배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분배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생활에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짬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우라 마사시는 ‘교환’이야말로 문명의 구동 바퀴였다고 했다. “교환이 욕망을 낳고 필요를 낳았다”는 것이다. “교환하기 위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이 시작되었고 어업이 시작되었으며, (중략) 농촌이 발전하여 도시가 도니 것이 아니라 역으로 도시가 농촌을 낳았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자동판매기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822년 서적 자동판매기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것은 발행이 금지된 책을 팔면 투옥되기 때문에 자동판매기라면 판매자가 누구인지 모를 테니 “판매가 금지된 서적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장치로서” 생각했다고 제작자 토머스 페인이 고백한 모양이다.
블랑키가 말년에 옥중에서 쓴 책이 《천체를 통한 영원》(1872년)이다. 이 책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패배 선언과 함께 저주와 같은 페시미즘으로 가득 찬 ‘지구에 가두어지기론(論)’이 존개되었다.
… 그리고 극단적인 논리는 이어진다. 모두들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지구는 갈 곳 없는 감옥이다. 한없이 넓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가짜이고 우리는 “인류의 오만함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 온 지구를 길동무 삼아” 언젠가는 파멸할 것이다.
11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그리스도교 교회 쇄신 운동의 일환으로 엄격한 육체 멸시를 법령화했다. 즉 혈액과 정액이 신체에서 나가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그것은 성직자가 타락했기 때문이겠지만 성스러운 피를 흘릴 권리가 있는 것은 그리스도뿐이라는 논리였다.
이질적인 것들끼리의 만남은 공간에 충격을 준다.
폴 비릴리오는 문명이 흉기를 창안해 왔다고 했다. 즉 침몰을 발명한 것이 배고, 추락을 발명한 것이 항공기고, 탈선을 발명한 것이 기차고, 충돌을 발명한 것이 자동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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