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등을 보이며 떠나는 사람은
결국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라고
내가 나에게 마법을 건 적이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둥근 지구를 돌고 돌아
내게로 다시 걸어오고 있는 것이기에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다
그 일이 사랑이라고 적었다
스무 해 전의 일이다
지구는 참 먼 길인가 보다
해가 돌아오는 지평선에 서서
달이 돌아가는 수평선에 서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 사람 기다렸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좀 더 멍청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이며 마법이 목격되기도 했다. 바람이 생기고 불어오고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손끝에 스치는 이 바람은 마법이었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이렇게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신비하고 때론 무서운 바람을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도 있었다. 눈은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다만 요즘 사람들은 “엄마~! 선녀님들이 뿌려주는 눈인데 왜 맞으면 안돼?”라고 묻는 자녀들에게 선녀님들이 심하게 더러워지고 독을 내뿜어서 그분들이 뿌려주는 눈도 맨 살에 맞으면 피부병을 앓게 된다고 얘기해줘야 할 것이다.
때때로 마법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풍경을 목격하고는 한다. 중세 시대 약간의 정신 지체가 있거나, 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 눈치 없던 사람들, 혹은 그저 운이 없던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법을 써서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마녀사냥이라고 하던가. 중세 유럽에서 누군가 떠나간 여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녀는 ‘결국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라고’ 중얼거린다면 그의 마법은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불러올 것이다.
여전히 세상에는 마법이 많다.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부정 없이 대통령 선거를 했는데, 부자 위주의 경제 정책을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겠지. 가끔 세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건, 세상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마법이 많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이면, 그래서 대학에 막 첫발을 디딜 무렵이면, 아마도 가장 마법력이 충만할 때이겠지. 사랑을 믿고, 우정을 믿고, 미래를 믿고, 특별한 근거는 없지만 자신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할 거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미친 듯이 오르는 대학 등록금이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교내 공사나, 맛없는 식당밥이나, 지방대라는 자격지심이나, 어디다 써먹어야 될지 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 몇 몇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조그만 술상 앞에서 사랑한다고 해놓고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동안, 마법은 서서히 깨질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되느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지.
그러나 때때로 마법은 시가 되기도 한다. ‘스무 해 전’ 떠나간 여인을 기다리는 순수하고 올곧은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법이란 깨지지 않을지언정 이뤄지지도 않을 것이다. ‘등을 보이며 떠나는 사람은’ 계속해서 걸어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찾아 그 곁에 머물 테니까. 당신이 ‘지금도 걷고 있겠지’ 라고 생각할 때, 상대방은 생각할 것이다. ‘지금쯤은 그 사람도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겠지’라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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