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이 시를 읽고 ‘고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래’는 무얼 상징하는 걸까? 가 먼저 생각난 사람들은 대한민국 중∙고등교육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변호사가 된 뒤 꼭 정부(교육청)를 향해 소송을 하고 피해보상을 받아내길 바란다. 이 시를 읽고 어쩐지 ‘고래’의 의미를 꼭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심리를 느낀 사람들은, “이 시에 나타난 고래의 의미는 다음 중 무엇일까요?”라는 혐오스런 시험 문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시를 보다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자유를 자신도 모르게 빼앗기고, 정답 맞추기처럼 스트레스 속에서 읽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고래’의 의미를 규정짓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고래’가 아니라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이 시속에서 ‘고래’는 진짜 고래일수도 있고, 떠나간 연인일 수도 있고, 깨끗한 환경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추억일수도 있고, 청춘일 수도 있다. 이 시는 고래에 대한 시가 아니다. 기다림에 대한 시인 것이다.
“그녀를 기다리며 나 중앙관 1층에 있었지요. 경비아저씨가 그녀는 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중앙관 셔터는 내려졌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중앙관 소파에 앉아 소리 없이 빈 계단만 바라보았지요.”라고 누군가는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속 주인공이 고래를 기다리며 느끼는 감정과 가장 흡사한 기다림의 경험을 자기 안에서 다시 체험하게 되는 것이 이 시의 미덕인 것이다.
내 경우에는 이제 이런 간절한 기다림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일상을 지배하는 기다림은 컴퓨터 부팅의 기다림이오, 버벅거리는 인터넷으로 인한 기다림이오, 버스와 전철의 기다림이오,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의 기다림이오, 월급날까지의 기다림이다. 오늘 내 수첩에 이런 말을 적었다. “이놈의 컴퓨터 속도를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할 수 있다면, 내 생명의 10년을 줄여도 되겠다.”고. 난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창과 문서 창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인생의 한없는 낭비를 느끼는 것이다. 라면이 끓는 3분 동안에도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몇 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서 창이나 컴퓨터 창이 뜨길 기다리는 동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컴퓨터에 의해 구속되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컴퓨터에 의해 다뤄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구속의 힘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렸던 경험은 기억에 깊숙이 자리잡아 한참 후까지도 두고두고 신경을 건드린다. 하지만 그렇게 얽매는 기다림이기에 그것을 통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요즘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 비록 나만을 위해 오는 것은 아닐지라도.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은 누구나 어릴적의 자신에게 대답해야 한다 (0) | 2009.04.07 |
---|---|
학보원고 - 20090401(장의차에 실려가는 꽃) (0) | 2009.03.26 |
타투에 대해 말하다 (0) | 2009.03.03 |
학보원고 - 20090304(여기부터알파치노에담기) (0) | 2009.02.26 |
구원 (0) | 2009.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