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르 클레지오, 문학동네, 2008(1판 1쇄)
사막 한 가운데서 만나는 물은 사막의 눈동자와 같았다.
그들은 여기서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사막을 피하고 있었다.
잠이 깼을 때, 그는 그동안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눈은 쟁반 같은 달을 찾았다.
어떤 날에는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 바다를 마주 보고 앉아서 그물을 수선한다.
향기도 돌이나 짐승처럼 각자 은신처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랄라가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온 욕탕 안을 하얀 안개처럼 가득 채우고, 또 천장까지 하얀 보자기를 수없이 만들며 햇빛을 비틀거리게 하면서 창문으로 빠져 달아나는 수증기이다. 욕탕에 들어가면 얼마 동안은 수증기 때문에 숨이 막힌다.
적십자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마치 개 짖는 소리 같아서 랄라는 알아듣지 못한다.
이곳 마르세유 대도시에서 랄라는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낸다. 그녀가 결코 알게 되지 못할 이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 틈에서, 수많은 거리를 다라 배회하는 것이다.
또는 몇 달, 몇 년 동안, 이렇게 낮이고 밤이고 끝없이 고무창 달린 구두 발자국 소리를 내며 사람들이 지칠 줄 모르게 걸어다니는 대로 위에 이름 모를 두려움이 바람처럼 쏘다닌다.
그들은 파니에 거리에 갇힌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사실을 진실로 모르는 것 같다.
이 도시, 저주받은 이 거리의 얼룩마다 돌마다 번져나오는 것 그리고 파니에의 벽 위에 쓰여 있는 기호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취기와 순종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목구멍과 관자놀이를 조이고, 이상한 소음을 울리며, 저 멀리 큰길을 따라 빛을 파닥거리게 한다.
아직도 삶은 방의 어둠 속에서 떨고 있다. 그 삶의 속삭임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까 말까 하게 아주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마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돌아다니는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그맣게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수족관의 괴물 같은 물고기처럼 커다란 유리창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에 뒤덮인다.
그녀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그녀가 이 생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오는 것을 보면 그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그녀를 쳐다본다. 거지들은 그녀를 창녀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창녀들만이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좋아하는 게 뭡니까?”
“삶이에요.”
“좋아하는 보석은?”
“길바닥의 돌멩이요.”
사복 정찰관은, 장교들과 같이 말을 타고 가면서 늙은 족장의 실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생각한다. 그들은 바로 북아프리카의 유럽인들이다. 사막의 사람들은 그들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종교는 황금과 돈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던가?
빛이 천천히 내려온다. 처음에는 하늘을 물들이고, 그 다음에는 건물 꼭대기 위로 내려온다. 그러면 가로등 빛이 창백해진다. 라디즈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별들은 자리도 바꾸지 않았고 별빛도 꺼지지 않았다.
수천 명의 사람과 말들이 단 몇 분만에 살해되는 순간에 과연 시간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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