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토머스 길로비치, 모멘토, 2008(초판 2쇄)
지난 3년간 미국의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에선 600마리의 흑곰이 살해돼 쓸개가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웅담이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
고생물학자이며 과학사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판단의 도구를 익히지 않고 희망만을 좇을 때 정치적 조작의 씨가 뿌려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일을 돌아보며 뒷궁리 즉 사후적 사고를 할 때는 관련 데이터에서 가장 이례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부각시키기에 유리한 통계적 분석을 하는 것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훈련된 과학자라면(과학자가 아니어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행위를 멀리한다.
우리는 일단 어떤 현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 현상의 이유나 의미를 설명하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사람들은 임시변통으로 설명을 만들어내는 데에 놀라울 만큼 능숙하다.
또 사람들은 가출 같은 아동기의 경험이 어떻게 성인기에 자살에서 평화봉사단 입단까지 전혀 상이한 결과들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받으면 어느 것이든 쉽사리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곧 설명하기이고 정당화하기이며, 다양한 결과와 특징과 원인들 사이에서 관련성을 찾아내기인 듯하다.
과학자들이 저온핵융합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과 17세기 성직자들이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한 갈릴레오를 믿지 않고 생애의 마지막 8년 동안 그를 가택에 연금한 것은 어떻게 다른가? 부분적으로는 회의적 태도와 독단적 완고함 간의 차이다. 저온핵융합에 회의적이었던 많은 과학자들이 그 현상을 실험실에서 재현해보려 했다. 반면에 갈릴레오를 비판한 사람들은 관련 자료를 보려 들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참가자들의 태도는 양극화되었다. 지지 증거와 반대 증거를 같이 접했는데도 양쪽 참가자 모두 자신의 원래 믿음이 본질적으로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이다.
노름꾼들은 결국 손해 보게 마련인 노름을 왜 그만두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서 연구는 시작되었다. 그토록 많이 읽고서도 조만간 크게 한번 잡을 거라고 믿는 이유는 뭘까? 이긴 판은 기억하고 잃은 판은 잊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름꾼들의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더 복잡하다.
이처럼 실패는 꼼꼼히 돌아보며 정당화하고 성공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도박사들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고쳐 쓴다. 그럴 때 잃은 판은 ‘딸 뻔했던 판’으로 치부되는 수가 많다.
돈을 딴 경기보다 잃은 경기들을 더 오래 되짚어보는 버릇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낳았다. 3주일 후에 물어보니 그들은 자기가 땄던 경기보다 잃었던 경기를 더 잘 기억했다. 이는 우리의 상식적인 직관뿐 아니라 많은 심리학적 논리들과도 맞지 않는다. 즉, 우리는 사람들이 성공의 경험을 기억하고 실패 경험은 잊음으로써 미래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유지한다고 믿지만 여기서의 결과는 반대였다.
우리는 반대되는 정보를 단순히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히 자세하게 살펴볼 경우가 많다. 꼼꼼한 검토 끝에 우리는 그런 정보는 너무 결함이 많아 관련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거나, 기존의 생각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 종류의 정보로 재정의한다.
노름꾼들은 따지 못한 사례들을 ‘도박에서 끝내 손해 보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잃은 판’으로 보는 대신, 전략만 약간 조정하면 된다고 알려주는 ‘딸 뻔했던 판’으로 여겼다.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 피터 메더워 경이 지적했듯이 과학은 “발상과 검증, 제안과 폐기, 추측과 반박이 신속하게 교대로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한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황금률을 따랐다. 즉, 내 연구의 일반적 결과에 반하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반드시 즉각 메모를 했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유리한 사실이나 생각들에 비해서 훨씬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다는 점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들어가려는 문이 잠겨 있으면 짜증이 나고 시간도 지체되므로 그 사건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별다른 불편이나 감정이 생기지 않으므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두 경우 중 잠긴 문에 마주친 일만 기억에 남는다. “세차만 하면 꼭 비가 온다.”, “물건을 버리고 나면 금방 쓸 일이 생긴다.” “엘리베이터는 항상 내가 가려는 반대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다른 버스는 다 오는데 내가 탈 버스만 오지 않는다.”, “샤워할 때 꼭 전화가 온다.” 따위 널리 퍼진 믿음들도 유사한 과정을 통해 생기는 것이 틀림없다.
내 버스가 오면 올라타고, 그걸로 끝이다. 긍정적 사건은 부정적 사건처럼 누적되지 않는 것이다.
달라진 상황에서 살면서 진정한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을 떠올리다 보면 다른 사람과 삶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현상은 경제학자나 의사결정 이론가들이 ‘거래에 대한 저항’이나 ‘소유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의 특수한 예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일종의 관성이 생겨서, 자신에게 이로워 보이는 거래도 주저하게 된다. 자기가 내놓으려 하는 것의 가치는 거래 상대자가 매길 가치보다 더 커 보이고, 그 결과 양쪽이 모두 만족할 만한 합의에 이르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사람과 삶을 바꾸기를 꺼리는 이유 중 마지막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삶의 시장’에서 자신이 지닌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가 평균적인 사람에 비해 머리가 좋고 더 공정하며, 편견이 적고, 운전은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온갖 측면에서 관찰되다 보니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레이크 워비곤은 유머 작가이자 방송인인 개리슨 킬러의 라디오 쇼에 처음 등장해 소설로도 다뤄진 가상의 마을로 “여자들은 모두 강인하고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으며 아이들은 모두 평균 이상인” 곳이다.
한편 교사들은 학생의 성적이 좋은 것은 훌륭한 지도 덕이라 여기고, 성적인 나쁜 것은 학생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쿤다가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추론) 과정이 자신의 당면 목표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점을, 자기가 지닌 관련 지식의 한 부분만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목표가 달랐다면 아마 다른 믿음들과 (추론) 규칙을 원용했으리라는 점을, 상황에 따라 심지어 정반대 결론이라도 정당화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애빌슨은 “신념은 소유물과 같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물건을 획득하고 보유하는 것은 그 물건의 기능과 가치 때문이다. 신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겐 기분을 좋게 해주는 믿음들을 획득하고 보유하려는 경향이 특히 강해 보인다.
우리는 물건에 대해 그러하듯이 믿음에 대해서도 소유욕과 보호 본능이 강하다.
진실이 지닌 문제는 그것이 대체로 불편하고 많은 경우에 재미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보다 재미있고 위안이 되는 것을 찾으려 한다.
- 미국의 평론가∙언론인 H. L. 멩켄
매체들은 흥미를 미끼로 사람들을 꾀려 들면서 근거 없거나 거짓된 이야기를 퍼뜨린다. NBC 방송의 앵커맨 톰 브로코가 시인한 대로 “오락적 요소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이해와 통찰을 주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
정부 관료들의 장황한 어투에 대한 농조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1950년대 초부터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이 못 말리는 이야기의 표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십계에는 297단어가 들어 있다. 미국 독립 선언서는 300단어로 이루어져 있다(이는 틀린 숫자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은 266단어다. 최근에 물가안정국에서 양배추 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내놓은 지시문은 2만6,911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상궤에서 벗어난 주장 바로 다음에 신뢰할 만한 전문가에게서 따온 다른 맥락의 말을 넣음으로써 마치 그 전문가가 앞의 주장을 지지하는 듯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십대 청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코카인에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통령 직속 약물남용위원회의 위원인 엘리엇 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손쉬운 해결책은 없습니다.’” 네스가 실제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고 믿을 수는 있겠지만, ‘세 명 중 한 명’이라는 추정치와 연루되기는 바라지 않을지 모른다.
허위합이의 효과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가치관, 습관을 실제보다 더 널리 퍼진 것으로 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준이 모호할수록 성공의 증거를 발견하기가 더 쉬운 것이다.
한 명민한 프랑스인이 루르드(프랑스에 있는 가톨릭 순례지. 이 지역의 동굴 속 샘물이 질병을 치료한다고 알려져 많은 환자가 찾는다.-옮긴이)에 갔다가 남긴 말에는 상당한 통찰이 담겨있다. 그는 환자들이 남기고 간 안경, 보청기, 지팡이 따위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의족은 없단 말이야?”
자기열등화란 남들이 우리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에 영향을 줌으로써 그들이 우리에게서 받는 인상을 관리하려는 수법을 말한다. 즉,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는 여건(핸디캡) 쪽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이끌어서, 나중에 혹시 실패했을 경우 상대방이 그 실패를 가볍게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자기열등화 전략에는 진짜와 가짜 두 종류가 있다. ‘진짜’ 자기열등화 전략이란 가시적인 장애 요인을 자기 앞에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행하는 일에 성공할 가능성은 작아지지만 실패했을 때 쉽게 변명할 수 있다. 시험공부에 태만한 학생이나 오디션 직전에 술을 마시는 배우가 좋은 예다.
반면에 ‘가짜’ 자기열등화 전략이란 자신의 상황에 장애 여건이 있다고 거짓되게 주장하는 전략으로, 몇 가지 면에서 ‘진짜’보다 덜 위험하다.
대학 쪽으로 눈을 돌리면, 많은 학생들이 마치 누가 공부를 제일 적게 하고도(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높은 성적을 받는지 경쟁하는 듯하다. 실제로 영어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 척하면서 남몰래 들고파는 학생을 이르는 ‘스니키 부커(sneaky booker)라는 말도 있다’
자기열등화 현상은 우리에게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선 진짜 자기열등화 전략을 보면, 사람들이 과연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기를 바라는지 궁금해진다. 재능이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한 사람으로 생각되기보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술에 절어 실패하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편이 정말 더 나은가? 대학생이 공부하지 않고 4년을 허비하는 것이 그토록 남들에게 내세울 일일까?
이런 식의 자기 내보이기, 즉 자기연출 전략이 흔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은 요즘 사회에서 인내와 노력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동시에, 굳은 의지와 끈질긴 노력보다 아름다운 외모나 매끈한 말솜씨, 타고난 운동감각을 더 높이 사는 사회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희한한 방식으로 자기를 내보이려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어떤 영역에서는 단지 ‘잘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며 ‘드물게 뛰어나야’, 혹은 그렇게 보여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한데, 많은 경우에 노력만으로는 그처럼 뛰어난 수준에 이를 수 없고 비범한 능력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낼 수는 없는 사람은 대신에 ‘이러저러한 핸디캡만 없었다면 그 수준의 성과를 냈으리라’는 인상만이라도 연출하려고 노력해볼 수 있다.
우리는 또 속히 뻔히 들여다보이는 아첨에도 넘어갈 수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적어도 우리를 아부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볼 정도의 안목이 있다는 데서 좋은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기이해 보이는 우연의 일치들이 실제로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통계학 강좌에서 즐겨 다루는 ‘생일 문제’가 좋은 예다. 특정 규모의 집단에서 최소한 두 사람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집단의 인원이 23명밖에 안 될 때도 그 확률이 대체로 50%나 된다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이 놀란다. 더욱 놀랍게도, 집단의 규모가 35명만 되면 확률이 85%로 커진다.
확률이 과대평가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 알바레즈는 어떤 이가 자기가 아는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하기 5분쯤 전에 그 사람을 떠올릴 확률은 한 해에 대략 0.003%라고 추정했다. 즉 인구가 1억 명이라면 알바레즈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매년 3천 명 이상, 그러니까 하루에 거의 열 명 꼴로 나온다는 얘기다.
회색보다는 흑백의 명확한 논리를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테며, 따라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나치게 단순한 믿음을 과도한 확신을 가지고 지키려 할 것이다.
기도 후에 소망이 이루어졌던 때와 기도 하지 않았는데 소망이 이루어졌던 때, 기도했는데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와 기도하지 않고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가 각기 얼마나 되는지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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