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습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아르테, 2009(3판2쇄)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만족한 듯 “우리의 어릴 적 꿈은 어찌되었지?”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꿈들은 날아갔고, 인생은 엉터리야”라고 대답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이런 가짜 명석함이 정말 싫다.
우리 가족과 어울리는 사람들 중 거의 모든 이가 이런 길을 걸었다. 그들은 자신의 지능을 보상받고자 애쓰고 학업의 기회를 레몬처럼 쥐어짰으며 엘리트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청춘을 보냈다. 그러고는 그 희망들이 오 그토록 하잘 것 없는 삶으로 귀결되었는가를 망연자실한 채로 자문하는 데 남은 평생을 보낸다. 사람들은 별을 좇는다고 믿지만 결국 어항 속 빨간 금붕어들처럼 끝을 맺는다.
그 누구도 인생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거기서 멋지게 성공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조촐한 집이나마 갖지 못하고 6평 안에 열다섯 명이 비좁게 살아간다. 그런데 네 사람이 1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올여름 뉴스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들의 더러운 건물 층계에 불이 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금붕어 어항 속에서 지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가구와 그림으로 가득 찬 120평짜리 집에 사는 나의 부모와 언니 콜롱브는 대양에서 수영을 하며 살아간다….
아파트도 딸도 없다면 그들은 죽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닐까?
“정치는…… 부자놈들이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장난감이죠.”
이 암고양이는 삶에 대한 어떤 설계도도 갖고 있지 않지만 어쨌거나 무엇 – 아마 안락의자일 것이다 – 을 향해 나아간다.
한 달 동안의 광적인 독서 끝에 나는 현상학이 사기라고 강한 안도감을 느끼며 결론지었다. 그것은 마치 대성당을 바라볼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대성당은 존재하지도 않는 영광을 위해 인간들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기에 나는 매번 정신이 아찔해진다. 마찬가지로 현상학은 그토록 많은 지적 노력이 그토록 헛된 작업에 봉사할 수 있다는 나의 불신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여주인이 그 개를 신사로 만들려 할 때면 그 개는 집요하게 개가 되려 애쓴다는 사실이다.
아빠에게 신문과 커피는 호박이 마차로 바뀌듯 아빠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요술지팡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모든 것은 제때에 온다.
마음이 아직 충만할 때 내 소매에 떨어진
하얀 진주들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그걸 가져간다
당신에 대한 추억인 양
<고금집>
나는 우리가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식에는 여러 층이 있고, 우리는 그 층을 선택해서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자식도 없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며 신도 믿지 않았다. 즉 삶이 인간에게 더 ‘수월’하게끔 다져놓은 이 모든 오솔길을 걸은 적이 없다.
지식은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미루게 도와주며, 그 다음에는 손자 손녀가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청소년들은 어른을 모방하면 어른이 된다고 믿지만 정작 어른들은 아직도 어린애들이며 인생 앞에서 도피하고 있다.
욕망! 욕망은 매일 우리를 바로 어제 우리가 패한 전쟁터로 인도한다.
꿀벌의 운명을 나눠 갖지도 않은 채
꿀을 만들 수 있다고
정말 믿는가?
가장 큰 분노와 불만은 실업도 가난도 아니며 미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문화가 없다는 느낌이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지나가는 순간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보는 순간 일어나는, 사물의 찰나적인 배열일 뿐이다.
보통 이 시간에 제젠은 술이 취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소가 초원의 풀을 먹고 아무 일 없듯 그는 술을 마셔도 잘 견뎠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e 4 - EBS지식채널 (0) | 2009.05.15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0) | 2009.05.11 |
이미 죽다 - 찰리 휴스턴 (0) | 2009.05.07 |
서번트 리더십 - 제임스 C. 헌터 (0) | 2009.05.06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박노해 (0) | 2009.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