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북하우스, 2009(1판 3쇄)
나는 고개를 돌려 분홍 머리의 벌레를 찾아보았다. 벌레는 사무실 두 모퉁이를 돌더니, 마음 붙일 곳이 없는지 세번째 모퉁이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경비원은 꿈지럭대고 있었다.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힘든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한쪽 날개만 달린 파리처럼 벽에 댄 굽도리널(벽의 맨 아랫부분에 나무로 댄 것 – 옮긴이)을 따라서 살살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울적하게 미소짓더니 전화를 끊고 메모지에 뭐라고 끄적였다. 먼지 덮인 복도 위로 한 줄기 빛이 내리꽂히듯 그의 눈에 희미한 광채가 떠올랐다.
그는 누르스름한 손을 쓸쓸히 펼쳤다. 그의 미소는 부서진 쥐덫처럼 교활해 보였다.
렘브란트가 더러운 엄지손가락으로 지저분한 팔레트를 들고 역시 너덜너덜하고 큼직한 베레모를 쓰고 있는 그림이었다. 다른 손으로는 붓을 어깨 위로 쳐들고 있어 누군가 계약금만 내면 곧 일을 시작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커다란 외제차는 혼자서도 잘 굴러갔지만 나는 형식상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나는 호통을 쳤다. 내 목소리는 닭장에서 지붕 널빤지를 잡아 떼내는 사람의 소리 같았다.
금발 미인의 사진이었다. 주교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박차고 튀어나올 만한 금발 미인.
“말이 많으시군요. 카드를 손에 쥔 사람치고는요.”
목소리는 간이 식당의 저녁식사처럼 차가워졌다.
그녀는 엉덩이 주머니 속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그는, 집이라면 풍향계를 달아놓는 자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이제는 이집트보다도 더 오래된 미소였다.
“헤밍웨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훌륭하다고 해줄 때까지 똑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남자지.”
앤이 잔을 들고 들어왔다. 유리잔을 들고 있어서 차가워진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에 닿았다. 나는 그 손을 잠시 동안 잡고 있다가, 마법에 걸린 골짜기에서 잠들었다 햇살이 얼굴에 닿아 깨어날 때처럼 아주 천천히 놓아주었다.
“…… 이런 동네는 통째로 매수해서 상자에 넣어서 포장해버릴 수도 있지. 그게 차이요.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은 거요.”
“얼굴까지 뇌수가 튀어나왔소. 이게 이 사건에 있어서 주제가인 모양이오.”
벌레는 너무 많은 꾸러미를 들고 가는 할머니처럼 약간 비틀거리며 기어왔다.
“남자들은 다 마찬가지예요.”
“여자들도 다 마찬가지지. 처음 아홉 명 이후에는.”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코트 하나와 모자 하나, 총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걸치고 방을 나섰다.
“시장은 어떤 사람인가?”
“어디서든 시장이란 어떤 사람이겠나? 정치가지.”
84센트짜리 저녁 식사는 버려진 우편 가방 같은 맛이 났다.
음식을 날라다준 웨이터는 25센트만 주면 나를 때려눕히고, 75센트에 내 목을 따 버리고, 세금 포함해서 1불 50센트만 주면 콘크리트통에 내 시체를 넣어 바다에 갖다 버릴 사람 같았다.
“이 경찰들 머릿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난 알죠. 경찰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멍청하거나 썩었거나 거칠게 행동한다는 게 아니고, 경찰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는 없었던 걸 준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그는 전에 봤을 때처럼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린 총은 사냥개의 코처럼 짙은 색으로 윤이 났으며 사무적인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거짓말을 대신한다면 여전히 거짓말이긴 해도 훨씬 더 대답하기가 쉬워진다.
“돈이 도움이 될 텐데.”
“늘 돈이 없을 때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실 돈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 뿐이에요.”
매리엇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었어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지. 경찰들이 그를 찾아가면 그는 죄다 불 테니까. 그는 그런 사람입니다. 불만 갖다 대면 슬슬 녹아버리는 친구죠. 그래서 녹아버리기 전에 그를 죽여야만 했어요.
“살아날 가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25구경이라면요.”
구급차의 의사가 나가기 전에 말했다.
“모든 건 총알이 내장 어디에 맞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 사람은 살아나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무스 맬로이는 정말 원치 않았다. 그는 그날 밤에 죽었다.
서늘한 날이었고 하늘은 아주 맑았다. 아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벨마가 간 곳만큼 멀리까지는 아니었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시나리오 선집 2006 상권 (0) | 2009.07.15 |
---|---|
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0) | 2009.06.24 |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0) | 2009.06.18 |
내셔널지오 그래픽 코리아 - 2009년 6월 (0) | 2009.06.17 |
HOW TO READ 키르케고르 - 존 D. 카푸토 (0) | 2009.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