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쏴라, 숭산 스님(현각 엮음), 김영사, 2009(1판 9쇄)
아무것도 원하지 말라.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라.
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고
깨닫기를 원하면 크게 그르친다.
‘내’가 없는 자리는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자리야. 이게 바로 세계 평화야.
“깨달음이란 말을 붙인 것에 불과해. ‘깨달음’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깨달음이 존재하게 돼. 그러나 깨달음이 존재하면 깨닫지 못함도 존재하지. 그로 인해 상대적 세계가 만들어져.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 이 전부가 상대적 세계야. 이러한 세계는 순전히 생각일 뿐이야. 그러나 진리는 생각이 일어나거나 상대적 세계가 나타나기 이전의 절대적 세계야. 그렇기 대문에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면 이를 취하게 되고, 따라서 그것은 곧 장애가 돼 버려. 그러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모든 걸 얻게 된다 이 소리야. 이해가 돼?”
“그건 네 눈이 아닌 거울에 비친 눈의 영상에 지나지 않아. 네 눈은 스스로 네 눈을 볼 수 없어. 네 눈을 스스로 보려는 그 자체가 그르쳤다는 말이야. 깨달음 역시 그래. 눈이 눈을 보려고 애쓰는 것과 같아.”
거울에 뭘 갖다 대면 거울은 그대로 비춰. 거울 앞에 있는 물건을 치우면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아. 거울은 아무것도 붙들지 않아. 이걸 ‘비추는 마음’이라고 해. 생각을 따르지 않으니까 업을 만들지 않자.
생각하는 동안은 산이 눈앞에 나타나도 볼 수 없어요. 고통스러운 생각만을 볼 뿐이에요. 슬픈 마음에 집착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도 인식할 수 없어요. 생각만을 좇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순간의 세계를 놓치게 돼요. 나는 언제나 ‘생각을 하는 동안 눈을 잃어버린다.’고 말해요.
누가 하늘을 파랗게 만들었어요? 누가 검게 만들었어요? 하늘은 본래 무슨 색이에요? 누가 색을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만들었습니다. 하늘은 ‘나는 푸르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하늘은 ‘나는 검다.’ 하고 말한 법이 없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요.
“묻겠습니다. 0이 숫자입니까?”
“그렇지, 네가 개구리들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줬지. 그러나 너는 화살처럼 지옥으로 직행할 것이야.”
경허 선사가 답했다.
“왜 지옥으로 가게 도비니까?”
“넌 이유를 이미 알고 있어.”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큰스님,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너는 ‘내가 저 개구리들을 구제했다.’고 했어. ‘나’를 만들었지. 하지만 이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나’를 만들어서 그르친 게야. ‘내’가 했다는 아상(我相)이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해도 지옥에 곧장 떨어질 것이야.”
“당신이 입을 여는 순간 그걸 놓치게 되오. 당신은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와 두 개의 콧구멍을 가지고 있소. 헌데 입은 왜 하나뿐이오? 뒤통수에 입이 하나 더 달렸다면 한 입으로는 밥을 먹고 다른 한 입으로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입은 왜 하나뿐이오?”
“겨우 그 정도야? 매우 작아!” 이 방 크기만큼도 안 돼. (대중 웃음) 그것은 본래 네 마음이 아니야. 본래 마음은 우주 전체야. 대우주와 네 마음은 하나지. 그런데 왜 ‘이만큼’이라고 한정 짓냐 이 말이야. 그게 문제야. 네가 ‘이만큼’이라는 마음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세탁해야 해. ‘모를 뿐’이라는 세제를 사용해, 빨고, 빨고, 또 빨다 보면 마음이 대우주와 같이 커지고, 커지고, 커져. 오염된 부분이 있으면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 그러나 실제로 네 마음은 없어.”
그러는 동안 독이 퍼져 죽게 돼! 생각, 분석 다 필요 없어. 먼저 화살을 뽑아. 그래야 독이 더 이상 퍼지지 않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있는 고통의 화살은 뽑아내려고 하지 않아. 생각하고, 분석하고, 읽는데 시간과 돈과 힘을 들인다 이 말이야! ‘어디서 화살이 날아온 거지?’ ‘누가 만들었지?’ ‘누가 쏜 거지?’ ‘화살을 쏜 위치가 어디지?’ ‘왜 쏜 거지?’ ‘화살이 공중을 나는 원리가 뭘까?’ ‘화살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일까?’
대다수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아.
‘아무것도 없다’를 이해하려 들면 자신의 삶을 구름이나, 번개나, 이슬처럼 바라보게 돼. ‘일체는 변하고, 변하고, 변한다. 모양이 있는 것은 항상 변한다. 그러므로 일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 삶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이걸 지식으로만 이해한다면 공에 집착하게 되어 찰나 찰나 타인을 위해 살지 못해. 이는 일종의 소외(疏外)고, 극단적인 경우 허무주의가 되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겪고 있다고.
그냥 할 뿐이야. 동물에게는 언제나 내일이 없어. 이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야.
그런데 인간의 생각을 보면,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이 너무나 빨리 복잡해지고 강하게 자리 잡게 되어 삶의 다른 기능과 균형을 이루지를 못해. 거기다가 살아남으려고 생각에 너무 많이 의존해. 생각 자체는 나쁘지도 않아. 그러나 집착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문제가 생겨.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의 중지 - 주제 사라마구 (0) | 2009.07.27 |
---|---|
내셔널 지오그래픽 코리아 2009년 7월 (0) | 2009.07.27 |
한국 시나리오 선집 2006 상권 (0) | 2009.07.15 |
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0) | 2009.06.24 |
안녕 내사랑 - 레이먼드 챈들러 (0) | 2009.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