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옙스키, 1998(2 1)

 

 

 

 

 

 

 예를 들면, 강렬한 의식의 결과로서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본인이 정말로 자기를 비열한으로 느낀다면 비열한인 것도 옳은 일이라고.

 

 

 

 반대란 있을 수 없다 이건 2 X 2 4니까! 자연은 너의 의견 같은 건 듣지도 않는다…”

 

 

 

 물론 나는 이마빼기로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만한 힘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코 이 벽과 화해하지는 않겠다. 왜냐? 내 앞에 돌벽이 버티고 서 있으나 나는 그걸 무너뜨릴 힘이 없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나는 이를 악물고 농담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노동자라면 적어도 일을 끝내면 임금을 받아가지고 술집에라도 가고, 다음엔 경찰 신세를 진다. 이것으로 일주일쯤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대체 어디로 가면 된단 말인가?

 

 

 

 그때 나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나의 생활은 벌써 그 무렵부터 음울하고 방탕하며 야생에 가까울 만큼 고독했다.

 

 

 

 나는 서슴없이 말하겠다. 현대의 어엿한 인간은 모두 겁쟁이이고 모두 노예인 것이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현대인의 정상적인 상태니까.

 

 

 

 우리 러시아 사람 가운데는 대체적으로 보아 독일식이나 특히 프랑스식의,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파는 일찍이 존재한 일이 없었다. 그런 종류의 낭만파는 무슨 일이 있건 까딱도 하지 않는다. 설사 대지가 발 밑에서 갈라지건, 온 프랑스의 인간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죽어버리건 그들은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 있다. 인사치레로라도 좀 변할 법도 한데,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들의 노래를 죽을 때까지 소리 높이 부르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승리한 기분이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저절로 내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마치 나에게 또 한 번 덤벼들기 위해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인간이란 자기의 행복한 점은 선반에 올려놔 두고 불행한 점만 자꾸 손꼽는 법이야.

 

 

 

 나는 가구가 딸린 셋방 같은 데서 살 수 없었다. 나의 거처는 곧 나의 은신처이며 나의 껍질이며 나의 상자여서, 나는 그 속에서 온 인류를 피해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소설식으로 생각하거나 공상하는 습관이 붙어 있었고, 또 자기가 전에 공상 속에서 창작한 것처럼 현실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도 이 기묘한 상황을 이내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나한테 더할 수 없는 모욕을 받은 리자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가 언제나 대번에 깨닫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즉 내가 누구보다 불행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직감한 것이었다.

 

 

 

 나는 선량한 인간이…… 될 수가 없어…… 사람들이 그걸 허용하지 않는 거야! 나는 간신히 그렇게 말하고, 소파로 다가가서 거기 엎드린 채 진짜 히스테리를 일으켜 15분 가량 통곡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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