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예담, 2009(초판 5)

 

 

 

 

 

 겨울은 많은 것들의 이름을 뺏어간다고 눈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줄기와 가지만 남아 그저 알 수 없는 <나무>들과, 지명마저 사라진 듯 새하얗던 오솔길

 

 

 

 눈의 무게로 일그러진 눈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죽은 왕녀의 몸처럼 그녀는 차가웠고, 그렇게 잠시 우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저기서 태어나고 싶었어요. 알프스에서 하이디가 아니라면 작은 염소로라도.

 

 

 

 우리가 머무른 동안에도, 풀어 헤쳐진 북극의 머리카락은 더욱 무성히 자라 있었다.

 

 

 

 즉 이것이 내가 간직한 그날 밤과, 그녀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설령 그날 내린 눈의 전부를 파헤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나 자신이 아버지가 싸지르고 간 똥처럼 느껴져.

 

 

 

 사람들이 신경을 써줄수록 똥은 불편해. 똥의 입장이란 그런 거야. 내버려두면 나는 알아서 거름이 될 거고, 또 엄마를 계속 좋아할 거야.

 

 

 

 짧은 장마가 지나간 빈 집은 뭔가 모르게 버려진 여자의 냄새 같은 것을 풍기고 있었다.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외모에 관한 한,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다. 선빵을 날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인간에겐 기회가 없다. 어떤 비겁한 싸움보다도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잡지에서 오린 여배우의 사진 같은 걸 놓고 절대 자위를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아름다운 게 싫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런, 우두커니 선빵을 맞는 기분이 더러워서였다.

 

 

 

 뭐가 이상해? 너나 나는 돈 벌면 안 저럴 것 같애?

 

 

 

 장마철에 피워둔 모기향 같은 느낌의 노을이, 여름의 끝을 향해 서서히 타들어가던 저녁이었다.

 

 

 

 가질 수 없으니까 열광하는 거야.

 

 

 

 단지 바람이 멎었을 뿐인데도, 지구가 정지한 느낌이었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말이 풀을 뜯듯 인간은 돈 돈 하는 동물인 거예요.

 

 

 

 달 위를 걸어다닌 인간 조차도, 그러나 스스로의 내면에는 발을 내리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친 커튼 같은 비가 종일토록 드리워진 날이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화장을 시작한 여자에겐 두 개의 얼굴이 생긴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에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고대의 노예들에겐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 한다.

 

 

 

 마치 전역을 하듯 그리고 어떤 삶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거잖아.

 

 

 

 당신이 무사해서 당신이 무사하니까 이제 저도 무사할 수 있습니다.

 

 

 

 살을 파낸 털게의 껍질처럼, 단단하고 공허한 어둠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문득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드는 거야. 살아 있는 인간들은 모든 죽은 자들의 희망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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