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이덴슬리벨, 2009(초판 1쇄)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식기세척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해주고 직접 식기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비디오녹화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이 화면을 직접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을 덜어준다. 전자수도사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점점 성가시고 부담스러워지기만 하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전자수도사는 전쟁이 평화이고 좋은 것이 나쁜 것이고 달은 파란 치즈로 만들어져 있고 신은 사람들이 특정한 사서함 번호로 큰돈을 보내주길 원한다는 것을 열광적으로 믿었고 급기야 이 세상의 모든 탁자 중 35퍼센트가 자웅동체라는 믿음까지 갖게 되었다.
“예, 거리 청소부 일을 하며 잘 지냈죠. 길에는 쓰레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많았거든요. 평생 그 일을 하며 먹고 살아도 될 정도로요. 그런데 다른 청소부의 담당 구역으로 쓰레기를 밀어놓았다가 해고당하고 말았습니다.”
성 요한께서 그 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쓰셨어. 분명히 페리 여객선을 기다리는 동안에 쓰셨을걸. 암, 그렇고말고. 요한계시록의 시작 부분만 해도 그래. 누구나 지루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다 보면 몽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잖아. 그러다가 흥이 나서 환각의 절정으로 치닫는 것이고. 꽤 도발적인 추측이지.
“그 남자 정말 줄기차게 떠들어대데요. 내가 화장실에 가서 10분만 뭉그적거렸으면 아마 계산대 돈 서랍한테라도 말을 하고 있었을 걸요. 만약 내가 15분 동안 화장실에 있었으면 계산대 돈 서랍도 그 남자한테서 도망쳤을 겁니다. 음. 예, 그 사람 맞네요.”
“사진 속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서 바로 알아보질 못했네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뛰어난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옛것을 거꾸로 뒤집은 데서 착안된다는 겁니다. 사용자가 적절한 명령을 내리고 관련 자료를 분석하면 올바른 결론에 이르게 해주는 프로그램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죠. 문제는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론이 (아무리 적절한 명령과 정보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원하는 결론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고든은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한 겁니다. 그는 사용자가 원하는 결론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후 관련된 모든 정보를 입력하면 그 결론에 이르는 데 필요한 논리적인 단계들을 구성해서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하더군요.”
저희 회사가 미 국방성에 넘긴 그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원하는 결론만 확실히 입력하면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단계별로 명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입장에선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죠.
더크는 초라한 사무실을 손으로 대충 가리키고는 창문을 보며 “빛도 잘 들어오고”라고 말한 후 연필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중력도 멀쩡히 작용해”라고 했고 “그 외에 모든 것은 운에 맡기는 거야”라며 말을 맺었다.
“맞아요, 빌. 지금은 잘나가고 있어요. 로버츠 부인은 어때요? 몸은 괜찮으신가요? 요즘도 아픈 발 때문에 고생이시래요?”
“그 발을 잘라낸 뒤로는 괜찮아요. 물어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차라리 절단 수술 후 그 발만 내가 갖고 나머진 버렸으면 참 좋았을 걸 싶어요…”
알아, 그래. 병이랑 항생물질이랑 의사의 진료 태도 중에 뭐가 제일 문제인지는 확실히 알기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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