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9(1 1)

 

 

 

 

 

 

 이곳의 역사가 그러하듯 모든 권리가 소멸한 뒤 한참 후에야 작성된 지불 장부인 양, 차가운 북풍은 흙을 몰고 와 헐벗은 나무줄기를 휘갈겼다.

 

 

 

 아이가 서 있는 곳에서는 형도, 말도 보이지 않았다. 갈대밭 너머에서 말이 물을 먹으며 생겨난 둥근 물결이 느릿느릿 번져 오고, 인디언의 수염 없는 마른 턱 아래 근육이 살짝 실룩였다.

 

 

 

 늑대는 오랫동안 소를 잡아먹었지만 소의 무지함은 늑대에게 수수께끼였다. 산의 초지에서 삽 같은 발로 비틀대고 피를 뚝뚝 흘리며 울어 대는 소는 혼란에 겨워 울타리에 제 몸을 짓이기면서 기둥과 철사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다.

 

 

 

 늑대란 알 수 없는 존재야. 덫에 잡힌 늑대는 이빨과 털가죽에 불과해. 진짜 늑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늑대든, 늑대가 아는 것이든.

 

 

 

 말발굽이 강바닥의 자갈에 소리 없이 닿는 것이 느껴지고, 물이 말의 다리를 핥아 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르몬교도였어. 그러다 기독교로 개종했지. 그다음에는 뭔지도 모르는 교에 들어갔고. 그러고는 내가 되었단다.

 

 

 

 돌과 꽃과 피로 이루어진 물질처럼 보이지만 이 세계는 전혀 물질이 아니라 이야기라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이야기이고, 각 이야기는 보다 작은 이야기의 합이지만, 동시에 모두 똑 같은 이야기이며,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각 이야기 안에 담고 있네.

 

 

 

 삶은 기억이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지. 모든 법칙은 씨앗 하나 안에 새겨져 있지.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지식이 박혀 있어.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어. 자기네들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목표는 움직임을 묘사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확신했네.

 

 

 

 세계가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 생명을 주는 것은 목격자가 아니겠냐고? 목격자 없이 이야기가 어떻게 존재하겠느냐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러자 하느님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에 처해 있는지를 깨달았어. 하느님이란 존재는 이 간단한 것이 없어 위기에 처해 있었지.

 

 

 

 사람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자신의 삶을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육신은 기념품에 지나지 않지만,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길은 다른 모든 인간의 길이라고.

 

 

 

 긴 여행은 종종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들지.

 

 

 

 너는 보게 될 거야. 길의 모양은 길이야. 길은 다른 길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만의 유일한 길이지.

 

 

 

 금성은 벌써 지고 없었다. 어둠 속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어슴푸레 빛났다. 저렇게 많은 별이 왜 존재하는지 빌리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 아래에서 눈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작은 자궁인양 자그마한 것이 재빨리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여자가 무모한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 죽지 않을 남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루미들은 수십만 년 넘게 피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복도를 따라 가느다란 사라디꼴을 이루며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모닥불을 피웠지만 장작거리가 거의 없어 불길은 이내 사위었고, 잠이 깬 소년은 겨울 별들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죽음을 맞는 것을 보았다. 다리를 느슨하게 묶어 놓은 말이 부스럭부스럭 서성이고, 풀잎이 말의 주둥이에서 서걱서걱 찢기고, 말이 쉬익 쉬익 숨을 쉬거나 철썩철썩 꼬리를 쳤다.

 

 

 

 그는 자신이 과거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죽어, 과거도 찬란한 미래도 없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하느님을 믿나요?

 키하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음이 있는 날에는.

 

 

 

 사람이 자기 삶을 미리 안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겠다고 선택할까? 사람들은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지. 하지만 앞날이란 없어. 하루하루는 그저 과거에 의해 정해지는 거네.

 

 

 

 세로(언덕)와 시에라의 사막의 이름은 오직 지도상에만 존재해.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붙이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거라네. 세계는 결코 잃을 수 없어. 우리가 바로 세계야. 이름과 좌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름이기에 그걸로는 우리를 구할 수 없어. 우리의 길을 찾아줄 수도 없고. 자네 동생은 세계가 그를 위해 선택해 준 자리에 있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거지. 하지만 그곳은 자네 동생이 스스로 선택한 곳이기도 해. 무시해선 안 될 운명이지.

 

 

 

 거짓말쟁이는 제일 먼저 진실을 알게 된 자이지.

 

 

 

 꿈이 미래를 말해 준다면 또한 미래를 가로막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시간의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사실 세상의 길은 그 어디에도 정해져 있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의 여행인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시간이기도 하지. 우리는 똑같아. 일시적이고. 수수께끼 같고. 동정받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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