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비둘기파, 오기와라 히로시, 작가정신, 2009(초판1쇄)
늘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분명 멋진 나날이 시작될 거야.
봐, 다른 세계가 보이잖아.
이제 출발이야.
언제나 곁에 있을게.
우리 결혼하자 학귀회관에서.
금연에 또다시 실패했다. 하지만 금연 뒤의 담배만큼 맛있는 건 없다. 담배를 끊자고 마음먹을 때마다 도리어 담배의 맛을 알아가는 기분이다.
나쁜 걸 가르치는 것도 아버지의 임무다.
“아빠가 하는 일은 그림 그리는 거야?”
사나에가 말을 걸어왔다.
“응, 뭐, 그것도 있지.”
“곱셈이라든가 나팔꽃 관찰은?”
“으음, 그런 건 없는데.”
“편하구나.”
“한 번 이혼한 남자는 여자한테 인기가 있다니까. 부러워, 이혼. 나도 해보고 싶어.”
“간단해. 결혼하면 돼. 결혼하면 벌써 반은 이혼한 거나 마찬가지야.”
가와타는 벌써 발걸음이 갈지자가 되었으나 스기야마는 이제 겨우 취기가 돌기 시작한 참이었다. 머릿속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모차렐라 치즈처럼 마음의 구멍을 메워주었다. 온몸에 만사형통할 것만 같은 기운이 넘쳤다. 술을 맛있다고 생각해서 마시는 일은 적었다. 늘 이 한순간의 트릭에 몸을 맡기기 위해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잠들기 위해서.
‘한 치 벌레에게도 단도 여덟 치’(‘한 치 벌레에게도 닷 푼의 혼’을 잘못 쓴 것. 미물에게도 나름대로 오기가 있다는 뜻-옮긴이)
‘마누라에겐 안 가도 싸움판에는 직행’
‘먹물(문신을 뜻함-옮긴이)은 등에 져도 빚은 지지 마라’
‘진역 삼 년 사바세계 팔 년’
옥상에서 가을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대체로 이 업계 사람 티를 내는 패션을 하고 다니는 광고 제작자 중에서 제대로 된 솜씨와 재능을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밤이면 밤마다 요즘 물좋다는 장소에 출몰해 잘나가는 크리에이터를 자칭하며 여자를 꼬여내는 무리도 그다지 신용할 만한 인간이 못 된다. 정말로 잘 팔리는 녀석에게는 매일 밤 그런 곳에서 놀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두목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누구누구 형님에게 몸을 맡겼다’ 등등의 대답도 눈에 띄었는데 이런 사람은 무기명으로 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부득부득 이름을 썼다. 어디나 다 똑같다.
프레젠테이션 성공의 비결은 상대의 상상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스기야마는 생각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뇌 속의 말라 비틀어진 걸레가 세탁기 안에 던져져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을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만든다.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이 갈기갈기 찢겨 풍경과 함께 날아갔다. 산소결핍 기운이 도는 텅 빈 뇌 속에 남은 심플한 말만이 광고 주제가처럼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아직이야, 아직이야, 멈추지 마, 멈추지 마, 돌아보지 마, 앞을 봐, 달려, 달려, 달려, 기합을 넣으며 달려.
“아웃 로여즈out lawyers라는 밴든데 멤버 전원이 법률사무소에 근무해요. 자기네가 섹스 피스톨즈 카피 전문이라는데 음악은 엉망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간 봉지를 객석에 던지는 걸로 유명해요.”
“누구야 이 사람?” “으응, 사나에 아빠?”
“어라, 요전번 사람하고 얼굴이 달라.” “갑자기 말랐어.”
“뭐? 두 사람이야?” “어느 쪽이 진짜야?” “요전번 뚱뚱한 사람이 2호?” “우리 아빠한테도 엄마 2호가 있어.” “사나에도 힘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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