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경쟁PT가 있었다.
월요일에 이사가 있었다.
월요일
월요일
이사를 하면서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내 허리.
다른 하나는 내 신발.
허리의 존재감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허리가 아플 때였다.
야근과 피로로 쫄아든 허리근육이
물기 없는 우동 면발처럼 푸석거리더니 아프기 시작했다.
내 마음과 내 가슴의 존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도
아플 때였다. 상처 받았을 때.
산소나 물이 없어 봐야 절실함을 느낀다는 것처럼
오히려 제정신이 아닐 때 ‘정신’을 느끼는 것처럼.
돈이 많을 때가 아니라
돈이 없을 수록 오히려 더 많이 돈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어지간한 짐들은 포장이사 아저씨들이 날라 주셨고
내 허리가 아파진 것은 저녁 8시쯤
짐 정리의 막바지에 이를 때였다.
신발들이 꽉 차있는 신발들을 이리 저리 옮겨보다가
예전 GI죠 장난감들 허리의 탄력있는 고무줄이
틱! 끊어져버리듯이
커다란 요트를 정박시켜놓은 닻줄이 끊어지며
파도 너머로 뒤퉁거리며 지 멋대로 배가 흘러가듯이
마저 정리해야 한다는 의욕이 망망대해 속으로 잠겨 들어 갔다.
신발이 슬리퍼까지 열 켤레.
언제 이렇게 신발이 많아졌을까.
아니 그보다 열 켤레나 되는데 왜 매일 신을 신발이 마땅치 않을까.
그 이유는 신발의 굽을 보자 분명해졌다.
굽이 닳지 않는 신발들.
대부분은 안 신는 신발들이었다.
사놓고 촌스럽거나, 옷이랑 매치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잘 안 신는 신발들.
잘 안 신다 보니 오히려 더 깨끗해서 버리기는 아까운 신발들.
누가 그랬더라,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라고.
그렇다면 신발은 신겨져야 할 텐데,
누군가 이 신발을 만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이 신발이 팔려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발에 신겨지길 바랬을 텐데.
마치 평생을 우리 속에 갇혀 사는 말이나
아파트 응접실을 오가며 숨죽여 뛰노는 개나
매일 밤 창문 틀에 기어올라가 모기장을 득득 긁어대던 옛날 내 고양이 감자나
여전히 내가 뭘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를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나.
초등학교 때는 운동화 한 켤레의 입이 찢어지고
밑창에 구멍이 나도록 부끄러움 없이 신고 다녔었는데
엄마랑 시장 가서 산 거라고 날아갈 것 같았는데,
지금은 신지도 않는 신발들이 네 다섯 켤레.
센스 없어 보일까 봐, 구린 신발 신은 남자는 인기 없다는 잡지 기사에,
굽이 낮아 다리 짧아 보일까 봐, 몇몇 동료들의 그건 별론데 라는 말에
십 년이 더 지나도 닳지 않을 것 같은 신발들.
닳지 않음으로써 내 영혼을 닳게하는 신발들.
더 멋져 보이고, 더 잘나 보이고, 더 센스 있어 보이고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내 길을 가는 걸까.
망아지는 태어난 지 30분 만에
눈도 뜨기 전에 서기부터 하는데
어쩐지 사람은 일어서기 전에 눈과 귀부터 떠서.
보여주기 위한 걸음만 걸어가는 건 아닐까.
제대로
닳아야 하는 곳부터 닳고싶다.
ps. 그래서 내린 결론.
빨리 여자친구가 생겨야 해.
그래야 남들한테 잘 보일 생각 따위를 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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