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경쟁PT가 있었다.

월요일에 이사가 있었다.

월요일 새벽 4시 반까지는 회사에서 일하고

월요일 아침 8시 반부터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내 허리.

다른 하나는 내 신발.

 

허리의 존재감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허리가 아플 때였다.

야근과 피로로 쫄아든 허리근육이

물기 없는 우동 면발처럼 푸석거리더니 아프기 시작했다.

 

내 마음과 내 가슴의 존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도

아플 때였다. 상처 받았을 때.

산소나 물이 없어 봐야 절실함을 느낀다는 것처럼

오히려 제정신이 아닐 때 정신을 느끼는 것처럼.

돈이 많을 때가 아니라

돈이 없을 수록 오히려 더 많이 돈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어지간한 짐들은 포장이사 아저씨들이 날라 주셨고

내 허리가 아파진 것은 저녁 8시쯤

짐 정리의 막바지에 이를 때였다.

신발들이 꽉 차있는 신발들을 이리 저리 옮겨보다가

예전 GI죠 장난감들 허리의 탄력있는 고무줄이

! 끊어져버리듯이

커다란 요트를 정박시켜놓은 닻줄이 끊어지며

파도 너머로 뒤퉁거리며 지 멋대로 배가 흘러가듯이

마저 정리해야 한다는 의욕이 망망대해 속으로 잠겨 들어 갔다.

 

신발이 슬리퍼까지 열 켤레.

언제 이렇게 신발이 많아졌을까.

아니 그보다 열 켤레나 되는데 왜 매일 신을 신발이 마땅치 않을까.

 

그 이유는 신발의 굽을 보자 분명해졌다.

굽이 닳지 않는 신발들.

대부분은 안 신는 신발들이었다.

사놓고 촌스럽거나, 옷이랑 매치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잘 안 신는 신발들.

잘 안 신다 보니 오히려 더 깨끗해서 버리기는 아까운 신발들.

 

누가 그랬더라,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라고.

그렇다면 신발은 신겨져야 할 텐데,

누군가 이 신발을 만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이 신발이 팔려나가

다양한 사람들의 발에 신겨지길 바랬을 텐데.

마치 평생을 우리 속에 갇혀 사는 말이나

아파트 응접실을 오가며 숨죽여 뛰노는 개나

매일 밤 창문 틀에 기어올라가 모기장을 득득 긁어대던 옛날 내 고양이 감자나

여전히 내가 뭘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를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나.

 

초등학교 때는 운동화 한 켤레의 입이 찢어지고

밑창에 구멍이 나도록 부끄러움 없이 신고 다녔었는데

엄마랑 시장 가서 산 거라고 날아갈 것 같았는데,

지금은 신지도 않는 신발들이 네 다섯 켤레.

센스 없어 보일까 봐, 구린 신발 신은 남자는 인기 없다는 잡지 기사에,

굽이 낮아 다리 짧아 보일까 봐, 몇몇 동료들의 그건 별론데 라는 말에

십 년이 더 지나도 닳지 않을 것 같은 신발들.

닳지 않음으로써 내 영혼을 닳게하는 신발들.

 

더 멋져 보이고, 더 잘나 보이고, 더 센스 있어 보이고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내 길을 가는 걸까.

망아지는 태어난 지 30분 만에

눈도 뜨기 전에 서기부터 하는데

어쩐지 사람은 일어서기 전에 눈과 귀부터 떠서.

보여주기 위한 걸음만 걸어가는 건 아닐까.

 

제대로

닳아야 하는 곳부터 닳고싶다.

 

 

 

 

 

 

 

 

 

 

 

 

 

 

ps. 그래서 내린 결론.

빨리 여자친구가 생겨야 해.

그래야 남들한테 잘 보일 생각 따위를 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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