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와 꿰매기

 

 

 

 고등학교 때 문과를 나오고 또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나로서는, 카피를 잘 쓰는 능력이 글을 잘 쓰는 능력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글을 잘 쓰던 사람이 카피도 잘 쓰게 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 이유가 글 쓰는 능력과 카피 쓰는 능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글을 쓰기 위해 필요로 하는 능력들(논리, 아는 단어들, 다양한 어휘, 다양한 텍스트의 경험)등이 카피를 쓰기 위해 필요로 하는 능력들과 중복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능력과 카피 쓰는 능력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로 하는 능력들(논리, 아는 단어들, 어휘, 다양한 텍스트의 경험 등)이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논리도 있고 아는 단어도 많고, 아는 어휘도 많고, 다양한 텍스트를 경험했더라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는 능력이란 뭘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비밀의 상당부분은 감성과 경험에 달려있다. 그리고 어떤 감성을 어떻게 발달시키는 경험을 했는가 하는, 인생시선이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내가 느끼는 감성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한 내 생각으로 표현할 때 가장 좋은 글이 나온다. 그러나 카피는, 아이디어에서 필요로 하는 감성과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과장이나 절제를 통해 다수를 만족시킬 때 좋은 카피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더 나다운 것을 쓰는가, 에서 비롯되는 글쓰기의 재능과 어떻게 가급적 효과적으로 메시지들을 전달할 것인가,에서 비롯되는 카피쓰기의 재능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과 달리 카피에서 특히 더 요구되는 능력이 하나 있는데, 그건 꿰매기라고 생각된다. 광고에는 관여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어지간한 메시지들은 이미 다른 광고에서 다 쓰였기 때문에 메시지와 메시지를 섞어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많다. 한편, 메시지를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visual과 관계 형성을 통해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문장 안에 요구되는 단어들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도를 독자들이 충실히 알건 말건, 어쨌거나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됐다고 만족하길 바라기 때문에, 카피에 자꾸 이것 저것 꾸겨 넣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카피는 시공간에 명백한 제한을 지니고 있고, 그러다 보니 마치 공간의 한 부분을 접어 꿰매버리는 듯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카피들은, 수준 있는 에세이나 소설텍스트 사이에(예를 들어 <자전거여행>이나 소설들) 툭 집어넣을 경우, 경악할 정도로 조잡한 문장이 될 수도 있다. 뭐랄까 밝은 교실에 들어선 프랑켄슈타인의 군대군대 꿰매진 몸뚱아리를 보듯이 혐오감과 난감함, 심지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글과 카피의 차이는 쓰기와 꿰매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쓰기는 말 그대로 써 나가는 것(개인적으로는 수영할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다. 반면 꿰매기는 붙들어두는 것에 가까우며, 그리하여 만들어낸 형태를 보여주려는 행위이다. 글의 즐거움은 읽어나가는 동안 느끼는 것이지만 카피의 즐거움은 보거나 듣는 동안에 느끼는 것이다.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림폰  (0) 2009.12.07
내 신발은 닳지 않는 신발  (0) 2009.12.01
오늘밤 전세계적으로 사자자리 유성우가 쏟아진다고 한다  (0) 2009.11.17
소음  (0) 2009.11.09
컨셉은 슬프다  (0) 2009.11.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