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드 보통, 이레, 2009(처음 펴냄)
항구 설비들의 규모가 아무리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토록 거대한 항구를 창조해낸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개인적이고 산문적인 욕망이다.
그렇다고 물류 허브를 그냥 보기 흉하다고만 묘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곳에는 현대 세계의 많은 작업장의 특징인 무시무시한 아름다움, 영혼이 없고 흠도 하나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곤봉으로 참치를 세게 내리쳤다. 참치의 두 눈이 눈구멍에서 쑥 빠져나갔다. 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입이 열렸다 닫혔다. 우리 입도 열렸다 닫혔다.
몽둥이가 다시 참치를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뼈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상자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뇌와 그간의 경험이 박살나는 소리였다.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로렌스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심리적 갈망에 응답을 하겠다는 계획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로렌스는 그런 계획이 노련한 브랜딩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면 비스킷의 폭, 형태, 코팅, 포장, 이름 등으로 구체화되며, 이런 결정에 따라 비스킷도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어울리는 미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인격을 부여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지역 영업 관리자나 건물 서비스 엔지니어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의미심장하다. 아이들 책에는 보통 가게 주인, 건설 노동자, 요리사, 농부가 등장한다. 인류의 생활을 눈에 띄게 개선하는 일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제조업자는 자신의 일이 인류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경박한 방식을 보면 그 주장은 빛이 약간 바랜다. 한 직원이 ‘핌블스’라고 부르는 만화 캐릭터들이 인쇄된 공짜 스티커 증정 행사를 골자로 한 슈퍼마켓 프로모션을 고안하는 데 3개월을 보냈다는 소식에 대한 힙리적 반응은 슬픔뿐이다.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캐럴이 떠난 뒤 시먼스는 잔뜩 쌓인 구겨진 티슈를 치우고 소파의 쿠션을 다시 정돈하면서,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다음 8주 동안 화랑에서 판매된 그림은 많지 않다. 전국지에 리뷰가 실리지도 않는다. 권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림을 사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 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 원통의 발명자인 캘리포티아의 엔지니어 조지 스톡브리지는 1920년대에 전선이 가벼운 바람에도 위험하게 진동하기 때문에 철탑이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 전선의 길이가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스톡브리지의 업적은 기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정확하게 조정된 진동을 반대 방향으로 보내면 전선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는 용수철로 분리된 무거운 추 두 개로 이루어진 튜브를 만드는 데 10년 세월과 더불어- 그의 동료들이 나중에 추측한 바에 따르면 – 그의 멀쩡한 정신을 바쳤다.
우리는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다시 송전선으로 돌아갔다. 너무 어두워서 하루가 자신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는 명함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우연적인 우주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덧없는 의식 한 조각이 아니라 ‘비즈니스 유닛 시니어 매니저’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그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무슨 비밀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구를 돌아다니며 냉방이나 난방이 조절된 공기를 마시고 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그의 인격이 텅 비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무 할 일 없이 방에 혼자 있어본 지 10년이 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근처에 있으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 외에 어떤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케이티 자신뿐일 것이다.
현대 세계의 사무실은 중세 기독교 왕국의 수도원과 같다. 겉으로는 정숙해 보이지만 비길 데 없이 강한 욕망을 자극할 만한 잠재력을 갖춘 무대인 것이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참가자들의 브로슈어를 훑어보다가 물 위를 걷는 것을 도와주는 신발을 발명한 이란인 모센 바마니를 특별히 만나보고 싶었다. 신발은 방추(紡錘) 모양의 광섬유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여기에 소형 외장 엔진을 장착했다. 이것을 신으면 시속 15킬로미터로 움직일 수 있고, 물에 맞게 개조한 스키폴의 도움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종류의 지능은 사실 그 핵심이 단지 남들보다 불만을 잘 느끼는 능력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인간 특질이 조화를 이루어서, 우리가 아름다운 동시에 사려 깊고, 주도면밀한 동시에 느긋하고, 재능이 있는 동시에 균형이 잘 잡혀 있을 수도 있다는 관념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그러니까 니체의 말처럼 아직 나 자신이 되지 못한 많은 수의 우리)는 혼자 있을 때면 우리가 해보고 싶어하는 여러 가지 일을 그려보면서 스스로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자신에게 더 도취되어 있을 때면, 심지어 가게 처마는 어떤 모양이어야 하고, 새로운 서비스의 광고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런 유쾌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백일몽은 우리 인격 가운데 한 측면,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부엌 한구석에 식류품점을 차려놓고 기뻐하고나 정원에 판지 상자로 호텔을 짓고 만족하던 바로 그 측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당시에는 괴테를 포함한 수많은 폐허 구경꾼들이 이탈리아 반도로 달려가 달빛을 받는 고대 로마의 잔재를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대 웅장했던 궁궐과 극장이 이제 잡초로, 또 피난처를 찾는 이리나 들개로 덮여 잇는 광경을 보고 위안을 얻었지요. 복합어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늘 능숙하기 짝이 없는 독일인은 이런 새로운 취미를 묘사하려고 ‘루이넨루스트Ruinenlust’, 즉 ‘폐허에서의 기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 사회가 발전할수록 파괴된 것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그들 자신의 성취의 덧없음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고 구원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폐허는 권력과 지위, 소란과 명성을 향한 우리의 욕망과 정면으로 충돌하지요. 폐허는 있는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부를 추구하는 우리의 풍선 같은 어리석음에 구멍을 냅니다.
우리의 건물, 스타일에 대한 감각, 우리의 관념들, 이 모든 것은 곧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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