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09(1 7)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행성planet이라고 하는데 그리스어의 <헤매는 자>란 말에서 연유한다.

 

 

 

 우리 은하가 소속한 국부은하군Local Group of galaxies에 대해서 머리털 은하단은 약 초속 7,000km로 후퇴하고 있다. 이 운동은 대폭발(Big Bang)에 유래하는 우주의 팽창으로 불린다.

 

 

 

 19세기까지의 천문학 관측은 태양이 은하수라고 불리는, 수많은 태양들이 중력에 의해 스스로 뭉친 거대한 집단 속에 든 하나의 외로운 별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혀냈다.

 

 

 

 두 대의 보이저가 각각 행성과 별을 향해서 지구를 떠날 때 금제 거울로 만든 포장 속에 든 금제 음반을 실었는데 그 속에는 59개국의 언어와 고래의 언어로 된 인사말, 12분짜리 수필, 입맞춤, 어린이 우는 소리, 사랑을 하는 젊은 여성의 명상의 뇌전도 기록, 우리의 과학과 문명 등 우리 자신에 관한 116개의 부호화된 그림, 90분짜리 지구의 최고 히트곡들인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과 민속음악, 즉 나바호 족의 밤노래, 일본의 샤쿠하치 연주, 피그미 처녀의 성인식 노래, 페루의 결혼식 노래, 3000년 전 진나라의 음곡 「흐르는 냇물,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 루이 암스트롱, 블라인드 우리리 존슨, 척 베리의 「조니 B. 구드」 등이 들어 있다.

 

 

 

 모든 시각적 인상 가운데 하늘의 깊숙함은 가장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       새무얼 테일러 콜레리지의 노트북(1805)

 

 

 

 여기에 별천지 있으니 인간의 곳 아니로다

-       이백의 「산중답속인」(730년경)

 

 

 

 이 자체로는 별로 놀라운 일이 못된다. 절대 0 (-273℃) 이상의 모든 물체는 전파를 포함한 전자파의 모든 파장에 걸친 복사를 방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은 유효 또는 <밝기>의 온도 약 35℃에 해당하는 전파를 방출하는데, 주위의 온도가 이보다 낮으면 예민한 전파망원경은 우리 몸에서 사방으로 방출하는 미약한 전파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온의 전파잡음의 근원인 셈이다.

 

 

 

 <산이 바다로 씻겨가는 데 몇 년이나 걸릴까>라고 봅 딜런의 노래 「바람을 따라 Blowing in the Wind」에서 묻고 있다. 그 답은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행성이 무엇인가에 달렸다. 지구라면 대체로 천만 년 정도이다.

 

 

 

 화산 폭발은 막대한 양의 물질(주로 화산의 미세한 물방울)을 성층권으로 날려 보낸다. 그곳에서 1-2년 동안 햇빛을 외계 공간으로 반사하여 지구를 식힌다.

 

 

 

 화산이란 어떤 의미에서 밖으로 분출하고 있는 행성의 내부, 결국은 냉각을 통해 스스로 아무는 상처로, 다시 새로운 상처 구멍으로 대치되게 마련인 성질의 것이다. 서로 다른 천체들은 각기 서로 다른 내부를 가지고 있다. 이오에서 액체 유황에 의한 환산 활동을 발견한 것은 마치 오랜 친구의 상처에서 녹색의 피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긴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릴 때는 앞으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아폴로 우주인들은 달을 왕복하는 도중에 그들의 고향 행성의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 주민들은 처음으로 그들의 세계를 밖으로부터 지구 전체를, 천연색의 지구를, 광막한 암흑의 공간에 놓인 채 회전하고 있는 희고 푸르고 아름다운 공을 보게 되었다. 그 화상들은 우리의 행성 의식을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상처받기 쉬운 한 행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생전 처음으로 수평선이 하나의 곡선으로 보였다.

그것은 어두운 푸른 빛의 얇은 솔기

(우리의 대기층)로 강조되었는데

확실해 내가 흔히 들어 왔던

공기의 <바다>는 아니었다.

나는 그 연약한 모습에 두려워졌다.

-       울프 메르볼트(독일인 우주왕복선 비행사, 1988)

 

 

 

 분자들이란 어리석은 존재다. 산업해독물질, 온실효과 가스, 우리를 보호하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들은 그 극도의 무지로 말미암아 경계를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주권이란 관념도 없다.

 

 나는 국가 간의 대립과 증오의 도가니 속에서 착상된 우주 비행이 놀라운 초국가적인 전망을 가져오게 된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다시 한번 감명받는다.

 

 

 

 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누가 발견했을까? 주요한 제조원이고 법인의 책임을 가진 듀퐁 사인가? 우리를 보호하는 환경 보호기구인가? 우리를 방어하는 국방부인가? 아니다, 그것은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다른 연구에 종사하던 하얀 실험복을 입은 두 사람의 과학자,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분교의 셔우드 롤란드Sherwood Rowland와 마리오 몰리나Mario Molina였다.

 

 

 

 1960년대 말엽 어느 과학자 모임에서 나는 행성과학에 있어 주목받는 문제들을 요약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나는 그러한 문제들 중 하나로 왜 모든 행성 가운데 토성만 환을 가졌나 하는 문제를 제안했다. 그 후 보이저가 이것이 문제가 안 됨을 밝혔다. 우리 태양계의 네 거대 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모두가 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각 환들의 집단은 독특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 목성의 환들은 엷으며 주로 어두운 아주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졌다. 토성의 밝은 환들은 주로 얼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는 수천 개의 환들이 있는데, 일부는 꼬여 있으며, 거무스름하고 이상한 바퀴 살 모양의 무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천왕성의 어두운 환들은 순수한 탄소 분자와 유기물 분자들(숯이나 검댕이 같은 것)로 이루어졌다. 천왕성에는 아홉 개의 큰 환이 있는데, 그 중 몇 개는 <숨 쉬듯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해왕성의 환들은 모든 환 가운데 가장 엷은데 그 두께가 크게 변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면 원호나 끊긴 원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 선구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1세기 전에, 간혹 지구에 떨어지는 천체 중 크기가 관측된 큰 소행성과 소행성의 조각 즉 운석의 중간 크기되는 천체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행성간 공간에 있는 작은 소행성 위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썼는데 군사적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에 미국의 어느 군수 전문가가 소련이 지구 근접 소행성을 일차 공격무기로 이용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계획은 <이반의 망치>로 불렸고 이에 대한 대항무기가 필요했다. 동시에 미국도 소행성을 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준수하는 외계공간 협정에는 <외계공간>에서 대량 살생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소행성의 궤도 수정 기술은 바로 이런 무기, 즉 사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형 살상무기를 이용하는 셈이 된다.

 

 

 

 반물질은 과학소설가나 이론물리학자의 지나치게 강한 상상 속에서 태어난 가공의 존재가 아니다. 반물질은 실제로 존재한다. 물리학자들은 원자핵가속기에서 그것을 만들어낸다. 고에너지 우주선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반물질에 관해서 자주 듣지 못할까? 왜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덩어리의 반물질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을까? 그 까닭은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접촉하면 강렬하게 서로 쌍소멸pair annihilation하여 감마(r)선을 강하게 방출하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린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물체가 물질로 되어 있는지 반물질로 되어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 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기를 원한다면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령 육지 조성 계획에 지출을 웃도는 혜택이 있다고 할 때도 그것으로 중요한 과학적 정보가 파괴되지 않는다고 사전에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행성의 토목공사가 소기의 목적을 이룰 확신이 서기 전에 그 행성을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할 것인가? 인간의 정체 체제는 수명이 짧은데도 육지 조성된 세계를 유지 보전한다는 인간의 장기적 약속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만약 그 천체에 생물이 살고 있었다고(아마 미생물만이) 가정할 때 인간은 그 세계를 변환할 권리가 있을까? 태양계의 여러 세계들을 미개척의 현상태대로 미래의 세대들(현재 우리가 예측조차 못할 용도를 그들은 고려할지도 모르는데)에게 남겨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은 아마 하나의 최종 물음으로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라는 이 세계를 이처럼 망쳐 놓은 우리들이 다른 세계들을 맡을 수 있을까?

 

 

 

 우리가 외계 지성을 발견하기 이전에 어떻게 우리가 그 발견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또 한편 우리가 어떻게 성공의 기회가 <드물다>고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외계 지성을 발견한다면 과연 그 혜택은 <극히 한정된> 것일까? 모든 모험적 탐험에서 그렇듯이 우리는 무엇이 발견될 것인지, 그 발견의 확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알았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서로의 말에 찬동한다. <왜 내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가? 우리의 행성은 은하수 속에 있지 않은가?>

 

 

 

 선구적인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를 일컬어 <우주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는 심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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